나는 왜 감정쓰레기통이었을까

올해의 이슈 : 인간관계

by 김결 kimgyoel



일 년 중 사건 하나가 크게 생기면, 그 해는 내내 그 얘기만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2022년엔 권고사직만 얘기하고 다녔다. 입사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회사가 망했고, 나는 마지막 월급도 제때 받지 못한 채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 충격이 어찌나 크던지,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나의 권고사직 당한 썰을 풀어댔다.



올해는 인간관계가 이런 큰 사건 중 하나다. 고등학교 친구가, 대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는데 나는 왜 해당사항이 아닌지, 20살 중반, 아이돌 덕질을 하다 만난 인연이 평생 인연으로 발전한 줄 알았더니, 결국 몇 년 감정쓰레기통 역할만 해준 후 버려지는 인연이었다니. 여러모로 현타가 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한테 힘들다고 말해 봐도, 남자친구에게 '오빤 그러지 않아? 정말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 물음표 살인마처럼 나의 감정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 해 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그런 인연은 끊어내는 게 맞다고 봐요.


그러니 나의 올해 이슈는 인간관계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외롭다는데 거기에 또 나를 힘들 게 하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으라니, 이게 말인가. 근데 또 20대의 나와 현재의 나의 달라진 점은 이제 나도 스스로 나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잠들기 전, 책상에 앉아 일기를 쓰며 나를 되돌아본다. 그날 느꼈던 모든 걸 기억하고 써내려 가는 건 못하지만, 가장 나를 괴롭히거나, 즐겁게 한 감정들, 사건들을 뽑아 적는다.



'나는 그 애의 뭘까, 궁금하지도 않은 X의 얘기를 늘어놓고, 본인이 관심 없는 얘기엔 안읽씹.. 이게 뭘까?'



일기장에 이런 내용을 적어놓는 횟수가 늘어난다. 어느 순간, 사람들을 만나 '인간관계'에 대해 현타가 왔다고 말하며 그들에 대해 얘기하는 내 입에선 긍정적인 얘기보단, 부정적인 얘기들만 쏟아져 나온다. F 성향이 강하니까 공감하고,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F와 상관없이 그냥 난 감정쓰레기통이었던 거였다.



이제 더 이상 감정쓰레기통이 되지 않았는데, 그걸 슬프다며, 나를 계속 감정쓰레기통으로 써달라며 구걸하는 모습이라니. 이런 생각이 드니, 굳이 오래된 인연에 집착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 가지 부작용이 생겼다. 자꾸 아직 거리를 좁히지 않은 인연에 '만나요 저희!'라는 연락을 보내고 있었다...



굳이 굳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인간인 나는, 엄친딸에게도 연락하고, 업무적으로 오랜만에 연락온 분에게 대뜸 조만간 만나자는 말로 답장을 보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선뜻 나를 만나줬다는 거였다. 만나서 또 몇 시간을 신나게 수다를 떨어줬다.



사람과 사람은 바람이 지나갈 정도의 간격의 사이를 둬야 한단다. 책에서도, 어른들의 입에서도 늘 듣던 말이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으론 아니었다.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힘들 때, 기쁠 때, 늘 내가 먼저 생각나면 좋겠고, 나도 누군가의 우정 1순위, 친구 1순위, 베스트 프렌드, 소울메이트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는 인간관계 1순위가 되고 싶었다. 참, 여러 방면으로 난 사랑을 갈구하고 있었구나. 세상 참 힘들 게 살고 있었다.



이 글을 적으며 내내 드는 생각은 사실 '이번 글 참 두리뭉실하네'다. 내가 누구인지 유추가 될까 봐, 혹시 내가 너무 솔직하게 적으면,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하고 알아챌까 봐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적었다. 그러다 보니 앞서 적은 글보다 자세히 적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내가 유명해지면 누구인지 다 폭로해야지.



이 마저도... 우리 집에서나 이슈가 됐어요. 우리 딸 힘들 게 한 사람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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