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보고 왔다
내 경우, 영화의 재미는 압도당하는 느낌에서 온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쥬라기공원>이나 <아바타> 같은 압도적으로 충격적인 비주얼과 독창적인 스토리가 없다면 뭘로 압도할 것인가가 고민의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쉽지 않은 과제고 어떤 문법이나 논리를 따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 <쓰리 빌보드>가 대단하다. 줄거리로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로 2시간 동안 내 멱살을 잡아끌고 다녔다.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까지 합하면 <시카리오> 이후 정말 오랜만인 듯하다. 이런 영화를 보면 정신이 멍해지고 이게 현실인지 영화인지 분간이 안 된다. 상영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한 3일 정도는 영화의 (장면이 아니라) 느낌이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밥 먹을 때도, 운전할 때도, 겉모습은 월요일의 나이지만, 소울은 영화관에 앉아있었던 토요일 오후의 나 그대로다.
줄거리는 별 게 없다.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혼자 키우는 이혼한 엄마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는 강간 살해당한 딸의 기억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딸을 죽인 범인이 잡히지 않는 것에 분개해 마을 외곽의 도로에 버려진 광고판 3개를 사서, 범인 못 잡는 경찰을 비난하는 문구를 대문짝만 하게 써붙인다. 존경받는 경찰서장이자 췌장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윌러비(우디 해럴슨)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망신 주는 것에 화가 난 경찰, 불편해하는 주민들은 밀드레드의 또 다른 적이 된다.
누구에게나 남모를 사정이 있고, 선악을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는 아주아주 뻔한 이야기다. 실제로 주요 신문 영화 평론 대부분이 잔인한 범죄로 딸을 잃은 엄마가 실은 아주 폭력적인 인간이고(밀드레드), 피해자가 비난하는 경찰이 실은 엄청 따뜻한 남편이자 아버지, 신뢰받는 지역사회 리더인 것(윌러비)을 강조하면서, 이 영화가 분노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으니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준다고 썼다.
하지만 '나쁘기만 한 사람도, 좋기만 한 사람도 없다'는 것만으로는 이 영화가 주는 엄청난 울림을 설명할 수 없다. 밀드레드가 비싼 돈 주고 대형 광고판을 사서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거지, 윌러비 서장?'이라는 극도로 자극적이고 직설적이고 타게팅까지 명확한 문구를 써붙인 이유를 단순히 딸의 죽음과 서장의 무능에 대한 분노로 설명할 수 없듯이.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저질 경찰 딕슨(샘 록웰)이 대놓고 흑인과 난쟁이를 조롱하고 오며 가며 사람을 패는 이유를 알코올 중독 엄마를 모시고 혼자 사는 외로움쯤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뒤에는 스포일러인 거 같습니다..)
밀드레드의 광고판 세 개는 외롭고 괴로운 나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내 마음 좀 알아달라는 처절한 외침과도 같다. 딸에게 좋은 엄마였는지, 딸이 나를 사랑했는지, 딸이 이렇게 된 게 내 탓은 아닌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자학을 끊어낼 방법은 내 탓이 아니라 경찰 탓이라고 소리 지르는 것 밖에는 없었다. 딸이 그렇게 돼서 너무 힘들지, 니가 그러는 거 이해해. 한 마디가 필요한데, 사람들은 '그래도 윌러비 서장은 좋은 사람이고 죽어가기까지 하고 있으니 니가 이해해'라고 하고 앉아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 거다. (치과의사 손가락 뚫어놓은 이유도 그거)
딕슨도 비슷해 보인다. 헤이트스피치에 가까운 막말과 폭력은 딕슨이 아는 유일한 소통법이다. 머리통 쏴버리겠다는 말을 아들과 농담으로 주고받는 알콜 중독 엄마와 중년이 될 때까지 함께 살면서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 '난 니가 좋은 형사가 될 거라는 걸 알아. 형사라는 꿈을 이루려면 분노를 줄여.' 윌러비 서장은 딕슨에게 처음으로 '너를 이해한다'는 말을 해 준 사람이다. 아버지와 같은 서장을 매도하는 광고판을 내건 밀드레드, 광고사 사장 웰비는 그에게 죽여 마땅한, 죽도록 맞아도 괜찮은 적이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시종 불안하게 흔들린다. 두 사람 앞에 칼, 총, 유리병 같은 무기가 될 만한 물건들이 놓여 있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조마조마하다.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은 실제로 영화 중반부까지는 손에 잡히는 것만 있으면 때려 부수고 집어던진다. 피가 철철 나는 상대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엔 매 순간 나의 염려를 보기 좋게 비웃는다. '저걸로 사람 또 때릴라 그러지.. 그러지 마..'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갈 때쯤, 밀드레드는 조용히 와인병을 내려놓고 "얘한테 잘 해줘"라는 따뜻한 말까지 날린다. 장총을 코밑에 들이대고 생각에 잠긴 딕슨을 보고 '얼굴 쏘고 또 그러지 마라.. 제발..' 이가 덜덜 떨리는 그때, 딕슨은 총을 내려놓고 수화기를 든다.
그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르는 계기는 윌러비 서장이 남긴 편지다. 가족에게도, 직장 선후배들에게도, 지역 주민들에게도 사랑과 이해를 베풀어 온 사람. 윌러비는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편지들에 '너를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나는 너를 안다. 너의 마음을 안다.
영화에서 밀드레드는 단 한번 "좋다" "고맙다"는 말을 한다. 딕슨이 밀드레드의 딸을 죽인 범인으로 확신한 인물이 진범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다. 딕슨은 그 놈이 누군가를 죽인 강간살해범이라는 건 확실하고, 그래서 죽어 마땅하니 같이 죽이러 가지 않겠냐고 말한다. 밀드레드가 듣고 싶었던 말이 그거 아니었을까. 실제로 죽인다는 게 아니라.. 그냥 니 마음 알아. 나도 같은 마음이야.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 죽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니, 오히려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 범인이 사는 동네 아이다호에 같이 가기로 한 날. 딕슨이 가지고 온 장총 옆에, 밀드레드는 가면서 먹을 과자를 싣는다. 가는 길에 둘은 대화한다. "정말 죽일 거예요?" "잘 모르겠어." "가면서 생각하지 뭐."
이제 강간범을 죽이는 건 이들에게 중요한 게 아니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공유할 사람이 생겼으니까. 딕슨이 밀드레드에게 강간범 살해를 제안하면서 하는 말 "Want some company?"는 영화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에게는 동행이 필요하다는 것. 아무리 좋은 사람도, 아무리 나쁜 사람도, 내 편이 되어줄,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을 휩쓴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역시 연기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성격이 아주아주 명확한 캐릭터들을 실존 인물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게 연기하는 프랜시스 맥도먼드(밀드레드 헤이즈)와 샘 록웰(딕슨), 우디 해럴슨(윌러비)을 보는 것만으로도 2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