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보고 왔다
1년 전의 나였다면, 이 영화는 아예 볼 생각조차 안 했을 거다. 한국영화, 그중에서도 가족 얘기는 어떤 내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너무 뻔하니까. 특히 가족 중에서도 질척임의 세계 대표 격인 한국 가족; 짜증 날 게 뻔해서 아예 볼 수가 없다. ('보는 사람 없을 때 내다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 했던 기타노 다케시가 우리나라 가족 관계의 질척임을 봤으면 아마 '보는 사람 있든 말든 내다버리렴' 그랬을 거 같음)
개봉하자마자 극장에 달려가서 이 영화를 본 건 순전히 박정민 배우 때문이다. '파수꾼'에서 오래 기억에 남았던 박정민 배우를 지난해 인터뷰를 하면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매력 화수분인 박 배우의 영화를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서, 예의상 본 거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하고 싶다...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박 배우로도 극복할 수 없는 영화면 어떡하지, 두려운 마음을 안고 극장에 앉아있다가 나도 모르게 울면서 나왔다. 버려져서 막살던 전직 복서가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던 엄마, 그리고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동생을 만나면서 가족이 된다..는 이야기는 누가 만들어도 똑같을 것 같지만, 이 영화는 조금 달랐다. 신파 영화의 3대 적폐인 다 아는데 결론 안 나오면서 질질 끄는 스토리, 너무 디테일해서 듣기 싫은 정보로 가득한 대사, 보는 사람 감정을 조종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으로 점철된 오버 연기. 가 없다. 엄마의 사연, 동생의 외로움, 주인공인 복서의 분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서 좋았다.
저 세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들의 인생에서 어떤 시점을 잘라내서 영상으로 보여준 것 같은 느낌. 이병헌의 요기 다니엘 기예 급 (미친) 명연기로 인해 심한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서 내가 이병헌인지 이병헌이 나인지, 나비가 나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죽 나왔다. 코 끝이 아리다가 가슴이 아프면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난 아무렇지 않은데 갑자기 눈에서 액체가 나와있는 상황. (세 주연배우의 연기가 정말 훌륭해서 연기 보는 것만으로도 관람의 의미가 있었다.) 다만 곳곳에 심어놓은 유머 코드는 화분에 권총 숨겨 놓은 것처럼 너무 티 나게 심어놓아서 별로 웃기지가 않았다.
너무 싫은데 너무 좋고, 너무 사랑하는데 너무 미운 감정적 질척임의 정점에 있는 한국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 그런 얘기 하지 마요. 미워하는 것도 싫고, 아 다 싫어요. 그냥 편하게 있다 갈게요."라는 조하의 말 (아주 부정확한 기억이라 실제 대사는 완전 다를 겁니다 아마)에 찡하지 않을 사람 있을까. 우리 엄마는 나 버리지도 않았고, 나는 동생도 없다. 그런데 나도 언젠가 저런 말, 분명히 했던 것 같다.
늘 결론은 그거다. 가족은 너무 좋으니까 너무 싫고, 너무 사랑하니까 너무 미워... 극과 극은 맞닿아 있다는 말 누가 했는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