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 영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모든 장면과 대사, 음악까지 뇌리에 박혀 버린 이 영화의 줄거리를 기억해 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힘들다. 마치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처럼, 심장이 내려앉고 눈물이 고인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완벽한 체험 영화다. 3D니 VR이니 하는 기술로 가상을 실제처럼 느낄 수 있게 되었다지만, 이 영화의 생생함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1983년의, 가공의 주인공들이 아름답게 빛나던 그 짧은 여름을 나는 분명히 살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의 이탈리아 마을. 그것만으로도 광채 그 자체인데, 그 빛을 배경으로 만들어 버리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청년들이 있다. 그리고 이 청년들의 사랑은 빛나는 외모보다 더 아름다워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멈추는 것 같다.
저명한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4개 국어쯤 하는 품위 있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함께 저택에서 살고 있는 열일곱 엘리오는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여름 방학을 보내러 온 대학원생 올리버를 만난다. 신경 쓰이고 불편한 이 감정이 사랑인지 미움인지 몰라서 엇갈리는 순간들, 그럼에도 분명한 당신의 존재를 떠올리고 써 보고 지우는 나날들.
논리적으로 전개되지 않아도, 선문답 같은 대사가 이어져도, 우리는 알고 있다.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서로를 바라보고 냄새 맡고 만져 보아도 그립고 불안한 그 마음이 관객으로 앉아 있는 나에게도 느껴졌다. 부여잡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까 셔츠를 움켜쥐며 꽉 끌어안았던 연인이 떠나 버리고, 손을 흔들 수도, 또 만나자는 말을 할 수도, 쳐다볼 수도 없어서 혼자 무너지고 마는 소년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냥 저 사람이 좋아,가 아니라 동경하고 존경하고 경외하는 마음. 성스러운 서로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엘리오와 올리버.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올리버의 대사 "Call me by your name. I'll call you by mine."은 당신이 되고 싶을 정도로 동경하는 마음, 떼어지지 않는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도 너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걸." 둘에게 서로는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아름다움이고 꿈인 동시에, 떨어져서는 안 되는 자신의 일부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 사랑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고통과 슬픔, 분노까지 포함해서 모든 감정 하나하나가 두 사람의 몸과 마음에 뿌리내려 잊히지 않을 것을 안다. "기억하고 있어, 전부." 마지막 통화에서 올리버가 한 말처럼, 함께 있지 않아도 두 사람이 기억하는 한 아름다운 여름의 사랑은 그 자체로 불멸이다.
완벽한 외모와 연기로 사랑을 표현하는 두 배우, 티모시 샬라메와 아미 해머는 정말 그냥 온몸으로 빛을 뿜어낸다. 티모시 샬라메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손가락 하나하나와 뼈마디까지 올리버를 사랑하는 엘리오 그 자체다. 벽난로의 불길을 응시하면서 사랑의 기쁨과 행복, 이별의 슬픔과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엘리오의 모습은 도대체 저게 연기인지 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비했다. 한 순간, 카메라를 응시하는데, 나를 바라보는 줄 알고 깜짝 놀라서 고개를 숙였다. 훔쳐봐서 미안해...엘리오.. ㅠㅠ
영화를 함께 본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이 영화 얘기만 했다. 놀랍게도 우리가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과 대사를 외우고 있었다... 서로 대사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요즘 노화로 기억력이 급감하고 있는데도.. 대체 이 영화는 뭐란 말인가!! 한 번만 더 보면 정말로 다 외워버릴 것 같다.
각본을 쓴 28년생 제임스 아이보리의 감각은 놀랍다 못해 소름 끼친다. 열일곱 청춘의 감정과 사랑을 어떻게 그렇게 생생한 각본으로 써낼 수 있는지. 관객을 엘리오로 만들어 버리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연출은 관객의 몰입과 체험이 기술 없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수프얀 스티븐스의 아름다운 삽입곡 mystery of love와 visions of gideon은 듣는 것만으로 영화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는 마법의 주문 같다. 음악을 틀면 눈부신 햇살 아래,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지나치는 소년들의 무심한 옆얼굴이 보인다. 엘리오 아버지가 석고상을 보면서 한 말, 무심하기 때문에 너무도 아름답다는 말은 엘리오와 올리버, 올리버와 엘리오, 두 청년에 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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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티드;
영화를 각본의 순서대로 찍었다고 한다. 티미와 아미가 정말로 엘리오와 올리버로 살았던 여름이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