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것을 미친 듯이 한다

아르헨티나-아이슬란드 / 월드컵 2018 러시아

by 하나김

16일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을 기다린 이유는 당연히 메시였다. 피파 관계자들과 심판들이 보기만 해도 미소 짓는 선수. 손 잡고 나오는 어린이들은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 버리고, 공 전달하는 어린이는 몰래몰래 훔쳐보면서 손 떨게 만드는 선수. 축구의 ㅊ도 모르는 나 역시 메시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안다. 언젠가 한 해설자가 '더 모스트 탤런티드 풋볼 플레이어 오브 더 제너레이션'이라고 외쳤던(진짜 외침) 기억도 있다.


그런데 맥주를 차려 놓고 텔레비전은 축구 모드(관객 소리가 커지면서 현장감 업 모드)로 설정한 뒤 월드컵 기사 검색을 하다가 본 기사 하나가 모든 기대를 뒤집어 놓았다. 아이슬란드 소금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 축구 국가대표로 뛴다는 메시 담당 수비수 사이바르손 선수의 인터뷰였다. 월드컵 나가야 돼서 러시아 가기 직전까지 일했다, 공장에서 소금 병을 라벨 스티커 부착 기계에 넣으며 인터뷰했다는 유의 웃음+신기 포인트보다는 이 선수의 삶과 축구를 대하는 자세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소금 포장 삼매경

"전문 축구선수는 최고의 직업이겠지만, 현실적인 직업은 아니다"


"나는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있을 수는 없기에, 지루하고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월드컵 전에 게을러지고 싶지 않다"


“나가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 팀을 위해 나를 희생하라. 미친 사람처럼 210%를 발휘하라"



현실적이어야 한다. 게을러지지 말라. 모든 것을 쏟아붓고, 미쳐라. 팀을 위해 희생하라.


아니 뭐 이런 완벽한 메시지가 다 있냐;


이런 마인드의 선수들이 210%(200%도 아님ㅎㅎ 뭔가 완전 미치게 열심히 한 다음에 또 쥐어짜서 더 해라 느낌)를 발휘한다면 이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3대 리그 득점왕 출신이 다 있는 아르헨티나가 압도적인 볼 점유율로 슈팅을 날리기 시작했다. 거의 유연한 댄스 무브 같은 슈퍼스타 축구 선수들의 움직임은 보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아이슬란드 선수들은 유연하지도 않았고, 발재간도 없었다. 길피 시구르드손이라는 선수만 댄스 무브길래 검색해 봤더니 프리미어리그 애버턴 소속이었다.


그러나 팀 아이슬란드는 강했다. 아구에로의 첫 골로 무너지는가 했더니 단 4분 만에 동점골을 터뜨렸다. 공이 저 위치 저 발 앞으로 가다니! 싶기도 했지만, 언제나 공을 발 앞에 갖다 줘도 못 넣는 팀도 있지 않은가...ㅠㅠ


강팀이 앞서는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바로 동점골을 넣을 수 있는 정신력. 무려 25차례의 아르헨티나 유효 슈팅을 막아낸 수비수와 골키퍼. 너무 속아 넘어가야만 할 것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유연한 동작에도 그냥 버티고 서 있는 선수들. 우리는 우리의 것을 한다. 미친 듯이 한다. 그리고 그걸 엄청나게 연습했다!


피파 랭킹 5위 아르헨티나와 22위 아이슬란드의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


"아르헨티나는 점유율에서 78%-22%로 압도했고, 슈팅에서도 26-9로 크게 앞질렀다. 아르헨티나가 713번의 패스를 시도하는 사이, 아이슬란드는 188번의 패스만 했다. 아이슬란드는 총 105km의 이동거리를 기록했는데 아르헨티나(101km)보다 4km가 많았다."


볼을 갖고 있지 않아도 뛰었고, 슛을 하지 않아도 뛰었다. 미친 듯이 뛰고 막았다.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실제로 이름도 다 손으로 끝나고 헤어 스타일도 비슷해서 구분 안 감;;;) 하나의 팀이 움직이는 느낌. 안 보이는 끈 같은 걸로 연결돼 있는 것 같은 선수들. 에이스라는 시구르드손이 공격 연결에 중요한 역할들을 해 주긴 했지만 시구르드손만 보이는 팀은 결코 아니었다. 에이스를 막는다고 될 게 아닌 팀, 그 자체로 무너지지 않는 견고함. (우리도 그래야 할 거인데..)


완벽한 미친 팀워크에, 관객들까지 하나가 된 모습이 2002년 월드컵 때 한국팀이 생각난다. 유명한 바이킹 응원은 경기장을 뒤흔들었고, 선수들의 심장을 뛰게 하고도 남았다. (나도 심장 뛰던데.)


https://www.youtube.com/watch?v=2dWBvy3QYIQ

이건 피파18 게임 월드컵 모드에 적용된 바이킹 세리머니

생전 여행 계획 세울 때 외에는 관심도 없던 아이슬란드를 갑자기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골 넣을 때, 골 막을 때마다 소리 지르고 남편과 환희의 포옹을 하면서 축하했다. 210%를 하고 있는 팀이라면 나랑 아무 상관이 없어도 응원하게 된다.


최선을 넘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팀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견고한 팀은 온 우주가 돕는다.


아이슬란드 경기의 교훈을 일에서 삶에서 실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