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가 대흥행했으면 좋겠다

이유가 세 가지 있어요

by 하나김

제목부터 이상하고, 포스터는 더더욱 이상하고, 예고편은 밋밋했던 영화 <서치>를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주말 저녁 친구로부터 "제발 이 영화를 보고 나와 이야기를 나눠 줘"라는 다급한(?) 메시지를 받기 전까지는.


친구의 소원을 들어줘야겠다는 사랑의 마음도 컸지만, 대체 뭐길래 이러나 하는 생각에 얼른 예매를 했다. 평일인 화요일 저녁 회차라 자리는 엄청 많았다. 당당하게 정중앙 자리를 예매하고 호기롭게 극장을 향했다. 옆 좌석에 가방+재킷을 두고 영화 봐야지, 그 큰 극장에 막 나 혼자 앉아 있는 거 아니야, 설레는 상상을 하며.


그러나 나의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평일 저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장은 꽉 차 있었다. 내 앞뒤 좌우는 물론, 앞앞, 뒤뒤, 좌좌, 우우 가리지 않고 만석이었다. (아니 지금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라도 개봉했냐고.) 내가 예매한 일요일부터 이틀 사이에 거의 인터넷 밈 급으로 이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난리가 난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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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깡총깡총 뛰며 극장을 나와 생각했다. 다들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재미있는 건 당연하지만, 반드시 보셔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1.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스릴러


스릴러야말로 각본과 편집이 중요하다. 던져 놓은 복선들이 수거되는 타이밍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 된다. 게다가 캐릭터의 매력이나 화려한 특수 효과로 빈틈을 메울 수도 없다. 스릴러의 주인공은 언제나 스토리니까.


<서치>의 각본은 극도로 치밀하다. 애니메이션 <업>을 연상시키는 도입부의 전개는 한 가족의 행복과 슬픔이 녹아 있는 수년간의 스토리를 5분 이내에 완벽하게 정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엄마, 멋진 아빠, 귀여운 딸의 이야기를 캠코더, 마이크로소프트 OS로 보여 주는데 녹화된 영상, 컴퓨터 화면의 알림 뿐인 영상에 코 끝이 찡해진다.


아빠, 딸, 동생, 형사, 미디어까지 거의 모든 화자들의 기록에 복선이 깔려 있는데 후반부에 그 복선들이 자연스럽게 모두 기억나면서 정리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디테일들이 제 타이밍에 제시되고 있어서 2시간 가까운 영화인데도 중요한 순간의 대사나 텍스트 메시지가 거의 그대로 기억난다.


영화를 열흘 동안 찍고 2년 가까이 편집했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 기간과 에너지가 들어간 게 보이고 느껴진다. 대단하다.


2. 디지털라이즈된 새로운 세대의 감정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100% 2차 화면이라는 점일 것이다. 컴퓨터 채팅창, 화상 통화 화면, CCTV나 텔레비전 방송 화면, 유튜브 영상 등 '화면'을 촬영한 '화면'으로만 구성돼 있다. 사실 이런 시도 자체가 그렇게 특이한 건 아니다. 모던 패밀리의 페이스타임 에피소드가 나왔던 게 아마 3년 전쯤이었던 것 같으니.


차이점이라면 우선 이 작품은 무려 2시간 가까이 '화면'만 보여준다는 거다. 약간 머리 아프고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큰 무리 없이 즐길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이 영화가 (나에게) 보여 준 가장 중요한 지점은 디지털 기기를 일상, 아니 거의 수족처럼 쓰는 우리들의 감정이 엄청나게 디지털라이즈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썼다가 지우는 문자, 마우스 포인트와 커서가 머무는 위치와 시간에 담긴 후회와 망설임, 미안함과 사랑. 노트북 배경 화면의 아이콘들이 배열된 모양과 창들이 띄워져 있는 위치, 검색을 하는 순서와 창을 닫는 순서 같은 것들이 혼란과 분노, 후회와 불안을 모두 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포스터 중엔 이게 그나마 나은 듯

나의 문자, 카톡, 라인, 메일, 검색 내역, 컴퓨터 배경 화면 같은 것들이 내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까지 명확하게 느껴질 수준인 줄을 미처 몰랐다. (노출되지 않게 조심해야징)


사라진 딸 마고의 친구들은 온라인에선 친한 척하다 막상 마고 아빠 전화를 받곤 그냥 아는 사이라고 둘러대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감정이 오프라인 면대면에서만 진짜고 온라인에선 가짜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영화는 온라인의 기록이 상당히 많은 팩트를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쓰다가 지워 버린 문자처럼, 실제로 만나서는 말하지 못하지만 온라인 기록만이 알고 있는 나의 마음이 분명히 있는 거니까.


이 영화의 감독 아니쉬 차간티는 91년생이다. 생각해 보면 91년생도 이제 나이 많은데.

철나고는 늘 디지털 기기와 함께해 온 90년대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나 같은 80년대 사람은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우리 감정을 디지털 기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해....


3. 백인이 아니어도 진짜 괜찮네


'스태링 존 조' 무브먼트(?)의 주인공 존 조는 이 영화에서 딸 마고를 잃어버린 아버지 데이빗 김 역으로 출연한다.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살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인데 아시아인이라는 배경이 활용된 장면이나 에피소드는 거의 없다. (진짜 그냥 유머 코드로 소비될 정도의 약한 거 하나 정도) 이 영화에서 존 조의 데이빗 김을 백인이나 흑인 배우로 바꾼다고 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냥 미국 캘리포니아 사는 중산층 가장이고 너무나 평범한 미국인이다. 한국 뿌리를 갖고 있으니 엄마가 자주 만드는 음식이 김치 음식이고, 핸드폰 주소록에 '엄마' '아빠'라고 한글로 타이핑된 연락처가 있긴 하지만 그게 스토리를 좌우하는 변수는 아니다.


이런 영화는 정말 처음이다. 아시아인들은 무술을 하거나 친구 없는 공부쟁이 너드이거나 슈퍼마켓이나 세탁소 하고 있는 엑스트라거나. 그런 식이 아니고선 캐릭터가 만들어진 적이 없다.


이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할리우드에선 '최초의 아시아인 주연 스릴러 영화'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정작 존 조나 아니쉬 차간티는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 정도로 할리우드의 아시아인 차별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흑인 차별 문제야 그나마 인지라도 되고 있지, 아시안은 거의 투명 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데 실제 미국에 아시안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데브라 메싱과 존 조가 함께 촬영한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

나 역시도 이런 정통 스릴러 영화에서 백인이 아닌 주인공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재미없어 보였던 이유는 포스터에 실린 인물이 동양인이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존 조가 단독 주연이라고 해서 수준 낮은 독립 영화 같은 것인가 싶기도 했었다. 나도 동양인인데,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세뇌당했나..ㅠㅠ


감독 차간티는 이웃에 한국 가족이 살아서 한국계 미국인이 친숙했고, 존 조의 팬이기도 해서 삼고초려 끝에 캐스팅했다고 한다. 본인이 인도계이기도 하지만 저 세대, 90년대생들에게는 아시아인들이 특이한 소수자가 아니라 그냥 이웃이고 연예인이다. BTS 좋아하면서 자란 더 어린 세대들이 어른이 되면 정말로 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내 입장에선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3번이다. 한번 느껴 보셨으면 좋겠다. 한국계가 주인공인 할리우드 스릴러 영화, 한국계가 아무런 동양적 배경이 없는 그냥 미국인으로 나오는 영화, 정말 안 어색하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놀랄 지경.


이 영화가 흥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지 않음'의 충격을 받고 나면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의 저변이 굉장히 넓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간티와 존 조는 역사를 쓰고 있다.


재밌고 새롭다. 잘 짜여 있고 디테일이 살아 있다. 화면만 보고 혼자 연기해야 했던 존 조와 데브라 메싱의 연기도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