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MLB 월드시리즈: 사람은 장기판의 말이 아니다
LA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사상 최장 경기로 기록된, 27일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승리하면서 한 고비 넘은 듯했다. 18회 말 첫 타자 끝내기 홈런으로 2대 0으로 밀리던 시리즈에서 한 게임을 가져왔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4차전 선발로 예상됐던 네이선 이발디가 12회부터 나와 6이닝 동안 97구를 던지고도 패했으니, 보스턴은 당장 다음 경기 투수 운용도 문제지만 팀의 사기나 분위기가 꺾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8일 4차전에서 다저스의 리치 힐이 7회 1아웃까지 안타 1개만 내주면서 압도적인 경기를 하는 동안, 다저스는 푸이그의 쓰리런까지 더해 4점을 냈다. (미국 시간으로) 당일 새벽 1시 반까지 18이닝을 뛴 양팀 타자들은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았다. 4대 0을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볼넷 두 개를 준 힐을 대신해 라이언 매드슨이 등판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매드슨이 쓰리런을 맞아 경기는 단숨에 4대 3이 되고 말았다. 매드슨은 1차전 3대 3 상황에 등판해 커쇼가 남겨 두고 간 주자를 포함해 2실점을 했다. 2차전에서는 류현진이 5회 2사 만루에 내려간 뒤 올라와서는 밀어내기와 안타로 3실점을 했다.(류현진 실점으로 기록) 전날 연장 12회에 아웃카운트 하나 잡기는 했지만, 이번 시리즈 내내 선발투수 방어율 올려 주면서 승계 주자 다 들여보낸 전력이 있는 선수였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지난해에도 좌우놀이와 데이터 야구로 라인업을 짜면서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당연하지만) 올해 또 그러고 있다. 눈치 보는 선수는 프랜차이즈에 레전드 반열인 커쇼 외에는 없다. 모든 선수는 장기판의 말이고 스탯으로 표기되는 로봇 같은 존재다.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것이 선수이고, 상대에 맞는 기술만 갖고 있으면 된다는 식의 논리.
매드슨의 올해 포스트시즌 기록은 놀랍게도 8.2이닝 방어율 2.08이다. 월드시리즈 경기 3개를 말아먹고 선발 투수들의 방어율을 올려놓은 건 데이터에는 안 나온다. 펜웨이파크에서 등판 전 추워서 난로에 손 쪼이고 몸 안 풀렸다고 시위했던 건 데이터에는 안 나온다. 자신 없는 표정이나 태도 역시 스탯으론 확인할 수 없다.
데이터는 사람을 바람도 흙먼지도 없는 진공 상태에 집어넣고 감정도 생각도 없는 로봇으로 가정하고 있다. 사람의 지금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지 기록과 통계를 보고 판단하니 저런 (망할) 일이 생긴다.
게다가 데이터는 출전 횟수가 많은 선수의 경우, 모수가 큰 자료의 경우는 상당히 왜곡된다. 켄리 잰슨은 모수가 워낙 크니까 최근에 계속 블론하고 있는데도 데이터상으로는 끝판대장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또 쓰고 또 얻어맞고..
못하는 사람을 안 쓰는 것뿐 아니라, 잘하는 사람을 제대로 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터에 '사람의 지금'을 더해야 답이 나온다. 나는 2차전 5회 말 2사에 류현진을 그냥 뒀으면 막았을 거라고 믿는다. 류현진은 그런 투수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서 만루 상황에 몰리고도 아웃을 잡아내는 선수다. 승부사 DNA가 있다. 그리고 그날 류현진의 컨디션은 확실히 좋았다. 이런 건 스탯에는 안 나온다.
코치가 올라가서 이래라저래라 하고 너는 그냥 어렵게 가서 절대 맞지 말아라 이런 디렉션을 주는 거 같았는데, 그런 식으로 해서 자신감이 잘도 생기겠다.... 야, 우리 1점 앞서고 있잖아. 동점 돼도 점수 내줄 수 있으니까, 안타 맞아도 잡아서 아웃시킬 수 있으니까 그냥 던져! 이랬으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 같다. 알렉스 로드리게즈, 데이빗 오티즈도 류현진 왜 내렸냐고 했던데. 선수들이 애냐, 월드시리즈에 나온 선수들이다, 믿고 빠져나오게 해야지 그걸 바꾸냐고..
https://www.youtube.com/watch?v=4aUFCAzYy1I
류현진이 볼넷, 안타로 만들었던 5회 말 2아웃 만루 상황은 심리적인 요인이 컸다. 포수도, 코치도, 감독도 나를 안 믿는 것 같은 상황에 집중이 될까.
보스턴의 알렉스 코라 감독이 만루 상황에도 프라이스를 그냥 두고, 홈런 맞은 킴브럴 그대로 두는 건 데이터만 보고 한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결정이다. 프라이스의 싸움꾼 기질을 아니까, 킴브럴이 자신감을 되찾지 못하면 다음 경기도 없으니까, 선수를 살리고 팀을 살리기 위해서 그랬던 거라고 생각한다.
다저스 선수들이 지금 뛸 맛이 날까? 선수를 사람 취급을 안 하고 장기판의 말처럼 생각해서 좌투수 나오면 좌타자 안 내고, 선발 투수는 1실점만 해도 5이닝을 못 채우고 내려오는데. 경기를 하는 동안 벌어지는 업 앤 다운을 흐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순간의 데이터로 기록하는 매니저를 보면서, 선수가 여유를 갖고 난관을 이겨낼 수가 있을까?
야구팀뿐 아니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성과 데이터가 평가의 기준이긴 하지만, 데이터만으로 사람의 역량을 판단할 수는 없다. 무조건 사정 봐주는 온정적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잘하던 동료가 갑자기 의기소침해졌다면, 업무 성과와 회사 일로만은 판단할 수 없는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의 결과는 나빴지만, 이 난관을 이겨내고 한 단계 도약해서 다음을 도모할 수도 있다. 리듬과 밸런스가 무너졌을 때에는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버티기도 해야 한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고, 성격도 있고, 오늘의 컨디션도 있다. 성과 지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건 사람만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