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아니 라이브 에이드 보고 왔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출발부터 불안했다. 천재 브라이언 싱어가 감독을 맡아 기대를 모았었는데, 크랭크업을 2주 앞둔 지난해 12월 무단결근을 거듭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제작사 20세기 폭스는 크레딧에 브라이언 싱어의 이름이 올라갈 것이라고 발표를 했다. 둘 중 하나 아닐까 했다. 감독직을 이어받은 덱스터 플레처가 너무 못해서 선택한 고육책이거나, 영화가 너무 거지같이 만들어져서 어차피 욕받이가 된 싱어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수작이거나. 시사 직후의 전문가 평론은 나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62%밖에 안 됐다.
반전은 관객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실은 봤다가 기분만 잡칠까 봐 안 보려고 했는데) 본 사람들마다 다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재밌다 이런 게 아니라 뭔가에 취해서 자기도 모르게 추천을 하고 있는 상태.. 대체 무엇이기에. 아저씨들의 공세가 두렵지만 나도 보아야겠다 결심하고 MX관을 예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넋 놓고 보다가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 있다 나왔다. 퀸은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알고, 또 좋아하는, 경외하는 밴드이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연령대의 관객이 일치된 감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퀸의 데뷔부터 지켜봐 왔던 전 세계의 팬들이 1985년 텔레비전으로 라이브 에이드 무대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완전히 그대로 느끼게 만드는 대리 체험의 VR 같은 거였다. 영화 티켓이 아니라 라이브 에이드 방청권을 산 거였어..
아마도 싱어는 당시 팬들의 마음을 2018년의 사람들(나이 불문)에게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 같다. 평단은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성장 배경과 성 정체성, 에이즈 투병 등을 평면적인 방식으로 단순하게 다루고 넘어가는 영화의 무신경함을 지적했지만, 그마저도 의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애정의 깊이와는 무관하게 타블로이드의 보도로 프레디의 이야기를 접했던 당시의 팬들 역시 프레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표피적인 것들뿐이었다. 무엇보다 1970~80년대의 사람들(백인들)이 파로크 불사라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된 탄자니아 잔지바르 출신 이민자이자 양성애자를 어떻게 바라봤을지, 에이즈 환자와 손잡으면 죽는 줄 알았던 시대에 에이즈에 걸린 록스타를 어떻게 이해했을지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그때 전 세계에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보며 퀸에 열광했던 사람들 거의 모두는 평단이 지적하듯 그렇게 표피적으로 아무런 생각도 깊이도 탐구도 없이 프레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프레디라는 인간을 탐구하지 못했을 그 사람들은 모두 프레디를 사랑했다. 에이즈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양성애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어도 프레디의 음악과 목소리는 이해할 수 있다. 2018년의 나도 그랬다. 싱어가 그려낸 것 이상으로 프레디를 알지 못하지만 라이브 에이드 영상을 보면 가슴이 울리고 코끝이 찡하다.
음악과 퍼포먼스로 완벽하게 커뮤니케이션했던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이야기하기에 이 영화보다 더 적합한 화법은 없을 것이다. 공상과학 만화처럼 흘러 지나가 버리는 월드 투어, 동화처럼 전개되는 사랑과 이별,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감에 나쁜 놈들과의 갈등 같은 극적 요소들을 덧입힌 성공 신화. 라이브 에이드 공연마저도 공연장의 생생함이 없어서 텔레비전 녹화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가수다' 식의 관객 반응까지)
그런 단순하고 저차원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프레디를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고 퀸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좋아하는 마음이 단순하고 저차원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음악이 그래서 아름다운 것 아닐까. 음악가의 면면을 다 알지 못해도, 인간적으로 지지하지 못해도,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완벽하게 음악가를 이해하고 있다.
싱어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 공연 당시 딱 스무 살이었다. 싱어가 우리를 1985년의 스무 살로 만들어 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열다섯도, 서른도, 마흔도 아니고 스무 살. 세상의 모든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를 사랑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이. 1985년에 나는 세 살이었는데, 지금은 30대 후반인데, 일주일 전 주말 극장에 앉아 있을 때만은 1985년의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
1. 프레디 머큐리를 아예 복제하다시피 한 배우 라미 말렉은 퀸의 라이브 에이드 영상을 1500번 봤다고 한다. 1500번.
2. 극 중 프레디의 목소리는 라미 말렉의 목소리 일부와 프레디의 생전 목소리 일부, 프레디 머큐리와 목소리 똑같기로 유명하다는 캐나다의 가수 마크 마텔의 목소리를 합친 것이라고 한다. 동영상 보면 마크 마텔 목소리 진짜 프레디랑 너무 똑같다. 신기한 건 프레디와 눈빛도 비슷하다는 거. 노래는 눈으로 하는 건가 봐요.
음악에 대한 이야기
1. 영화 보고 와서 퀸 음악도 많이 들었지만, 조지 마이클 공연을 엄청나게 봤다. 퀸 하면 트리뷰트, 트리뷰트 하면 조지 마이클. 이런 로직..; 1992년도 퀸의 프레디 머큐리 트리뷰트 공연에는 데이빗 보위, 엘튼 존, 애니 레녹스, 액슬 로즈, 메탈리카 등 전 세계의 스타들이 총출동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지 마이클만 기억한다. 조지 마이클이 부른 'Somebody To Love'는 이후로 그냥 조지 마이클의 노래가 되었다. 조지 마이클 베스트 앨범에 수록되었을 정도니까..; 엘튼 존의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도 그렇고. 부르기만 하면 자기 노래로 만들어 버리시는 분. 완벽한 스타이자 가수였던 조지 마이클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어서 마음이 아팠던 주말.
2. 트리뷰트 공연에서 액슬 로즈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공연 자체는 그냥 그런데, 액슬 로즈가 튀어나오는 타이밍과 패션, 무대 매너가 너무너무너무너무 멋지다. 봐도 봐도 소름이 끼친다. (3분 20초 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