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 보고 왔다
자기소개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고향이나 출신 학교, 가족 관계는 빼놓지 않고 말하는 것 같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묻는 질문을 떠올려 봐도 그렇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디서 왔냐, 전공이 뭐냐... 따지고 보면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조건 혹은 배경에 대한 질문들일 뿐인데도 그렇다.
<그린 북>은 조건이나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를 명확하게, 유머러스하게, 무엇보다 따뜻하게 보여 주는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인종 차별이 상식처럼 통용되던 1960년대의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고용된 이탈리아계 백인 토니가 미국 남부 투어를 함께 다니면서 마음을 나누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은 세상의 상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캐릭터들이다. 흑인인 셜리는 부자이고 능력 있고 고상하고 단정하다. 백인인 토니는 돈 없고 주먹 쓰는 거 말고는 딱히 능력도 없고 무식하고 천박하다. 무엇보다 흑인인 셜리가 백인인 토니의 고용주다.
둘 사이의 관계가 이렇다고 세상의 편견을 뒤엎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토니는 공연이 열리는 호텔 식당에서 스테이크 먹을 수 있지만, 셜리는 나가서 치킨 먹어야 한다. 토니는 양복점에서 들어가서 양복을 맞출 수 있지만, 셜리는 그럴 수 없다. 셜리는 가는 곳마다 편견과 차별에 맞닥뜨린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 북>에 실린 유색 인종 전용 호텔을 찾아다니면서 묵는 건 당연하고, 공연장 화장실이나 대기실도 제대로 사용하기 어렵다. 셜리가 무대에 오를 아티스트라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냥 흑인이니까 먹으면 안 되고 입으면 안 되고, 사면 안 된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놓고 하는 차별' 말고도 작은 편견과 몰이해들도 셀 수 없이 많다. 흑인은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나 팝을 좋아한다는 편견, 흑인은 치킨을 좋아할 거라는 편견('어글리 딜리셔스' 보고 알았는데 흑인 노예들이 키울 수 있었던 유일한 동물이 닭이어서 흑인 노예 거주 지역에서 닭튀김 요리가 발달했고 한다. 치킨은 흑인에 대한 편견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흑인은 발음이 부정확하고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편견. 이런 편견은 당사자인 흑인들조차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셜리는 백인의 세계에서도, 흑인의 세계에서도 배척당하는 외로운 존재다.
사람은 모두 다르잖아, 각기 다른 역사를 품은 우주잖아. 모두가 이렇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강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다. 저 동네 사람은 저렇잖아, 저 나라 사람은 저렇잖아, 같은 것들. 좀 더 쉽게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들여다보고 싶어서 수백만, 수억의 사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서 생각하고는 이해한 척해 왔다.
사실은 그런 건 없다. 흑인은 재즈를 좋아해.가 아니라 사람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좋아해.가 정답이다. 셜리가 호텔 공연을 째고; 흑인 바에 들어가서 연주한 쇼팽의 곡은 흑인 손님들의 마음을 울렸다. 허름한 바에서 낡은 옷을 입고 춤추는 흑인들이라고 해서 쇼팽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흑인은 치킨을 좋아해.가 아니라 사람들은 맛있는 치킨을 좋아해.가 답이다. 평생 프라이드치킨을 먹은 적 없는 고상한 셜리가 KFC 1호점에서 사 온 치킨을 먹고 반한 건, 맛있어서지 흑인이어서는 아니니까.
영화를 보고 컨트리 가수 케인 브라운을 떠올렸다. 브라운은 몇 달 전 신곡 셔플링을 하다 발견한 보석 같은 음악가다. 찾아보니 컨트리 음악계의 미래를 이끌어 갈 스타로 주목받고 있었다. 문제는 브라운의 외모다. 흑인, 인디언 혼혈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브라운은 데뷔 이후 컨트리 음악계는 물론 팬들로부터도 일종의 배제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분명히 컨트리 음악인데 "컨트리 음악 같다"거나 "컨트리를 좋아하는 뮤지션이구나"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재밌는 건, 브라운이 미국 컨트리의 본고장인 테네시주 내슈빌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컨트리 음악의 정통성 측면에서는 그 누구보다 탄탄한 배경을 갖춘 셈인데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컨트리 톱스타 중 한 사람인 키스 어반은 뉴질랜드 출신이지만 컨트리 뮤지션으로서의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받은 적은 없다. 외국 사람이어도 상관없는데, 피부색이 다른 건 상관이 있다.
1960년대의 이야기가 지금도 큰 울림을 주는 이유다. 60년이 지난 2019년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하고 재단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고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조건이나 배경에서만 찾아온 건 아닌지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너의 조건이 아니라, 너의 생각을 물어야 한다. 이 음악이 아름다운지, 이 치킨이 맛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비고 모텐슨을 아라곤이 아니라 <이스턴 프라미스>의 목욕탕 알몸 격투 신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러시아 마피아가 이탈리안 아메리칸이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비고 모텐슨처럼 날카로운 이미지의 배우가 무던하고 따뜻한 사람을 연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마허샬라 알리는 차분하고 세련된 모습과 불안한 내면을 동시에 보여 준다.(이게 가능한가;) 마허샬라 알리가 연기한 돈 셜리라는 실존 인물이 너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음악을 찾아 들어 보았는데 계속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