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들고 들어간 책 <규칙 없음>
출산 휴가 중이라 아기하고 하루 종일 생활하다 보니 인간의 본성 같은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아기는 매일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고 발전한다. 발전의 과정은 흔히 말하는 계단식에 가깝지만 엄밀히 말하면 계단식이 아니라 추진식(?)이다. 반복 연습하다가 도약하는 개념이 아니라, 반복 과정에서 수시로 후퇴가 발생하다가 어느 순간 도약한다.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해 이리저리 휘젓다가 어느 순간 손가락도 움직이고 잡기도 하는 아기는 몇 분 뒤에는 다시 손을 통제하지 못해 당황한다. 아기 발달 과정을 다룬 친절하고 전문적인 책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에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 실제로 아기들은 원더 윅스라 불리는 급성장기에 보채고 울고 엄마를 찾으면서 더 작고 어렸던 시절로 퇴행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느낌.. 그럴 때 기다려 주면 다음 날에 또 다른 아기가 되어 어제 못했던 것을 멋지게 해낸다.
호기롭게 조리원에 들고 갔다가(책 읽고 영화도 볼 계획이었다고;) 이후 하루에 거의 두 페이지씩 읽는 수준으로 이제야 다 읽은 책 <규칙 없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도 비슷하다. 책은 규칙 없이 유연성과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조직을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도록 구성돼 있다. 과정은 이렇다. 조직 내 인재 밀도 높이기>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화 만들기 > 통제 제거하기를 세 차례 심화, 반복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CEO 리드헤이스팅스는 나도 솔직하지 않을 때 있다/ 솔직한 피드백 들으면 기분 안 좋을 때 있다/ 적응 못하는 사람도 있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회사가 최고의 인재가 모여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성장을 독려하는 유연하면서도 냉철한 스포츠팀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은 확고하다. 공저자인 에린 마이어 교수의 ‘이러면 어쩔래?’ 질문 공세에도 흔들림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낫다.는 답이 계속 나온다. 문제가 있더라도 퇴행의 징후를 보이더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철학은 구현되지 않는다.
헤이스팅스가 스포츠 팀같은 프로 조직의 정반대로 거론하는 키워드가 가족이지만, 나는 새로운 가족 구성원인 우리 아기의 성장을 보면서 퇴행을 기다릴 수 있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배우고 있었던 터라 같은 맥락으로 읽었다. 그리고 조직은 인간 관계의 하나이기도 하니까. 어떤 경우든 심화, 반복을 할 수 있는 힘은 이게 맞나 싶을 때 기다리고 밀고 나갈 수 있는 확고한 믿음이다.
책 구성은 되게 좋았는데 밑줄 그은 포인트는 의외로 없었다. 구성을 따라, 주제대로 반복하면서 심화하는 게 중요한 메시지라 그런 것 같다. ‘이의 제기 장려’를 위한 스프레드시트는 적용해 보면 좋겠다 해서 메모해 뒀다. 이의 제기를 말로 면전에서 하려면 여전히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어떤 경우엔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 이의 제기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만 비즈니스 의사 결정도 가족의 의사 결정도 다수결이나 평균값으로 정하는 건 절대 안 된다. 사안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레퍼런스와 의견을 모은 뒤, 결정은 담당자, 당사자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