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봐야 할 이유는 없다
지식 콘텐츠 플랫폼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지식 콘텐츠가 왜 있어야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의식주처럼 누구나 계속해서 소비할 것이 분명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욕을 자극하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개인이 일상에서 지식을 소비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돈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지식 콘텐츠는 구매욕을 자극하는 전략으로 '성장'이라는 효용을 내세워 왔다. 배우면 성장할 수 있다, 읽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장이 정말 지식의 효용이 맞나 하는 의심을 거두기 어려웠다. 서비스에서 이탈한 고객들로부터 성장을 못했다고 느꼈다거나, 성장을 목적으로 각 잡고 보려니 부담이 커서 이용을 안 하게 됐다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도 지식 콘텐츠 소비를 통해 성장을 체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읽어봤자 성장할 수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지식 콘텐츠를 읽어서 성장의 효용을 느끼려면 수년,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훌륭한 사람들이 지식 콘텐츠를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은 지식을 소비하면 성장할 것이라는 환상을 강화한다.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역도 참인 건 아닌데 느낌 상 역도 참일 것 같을 때가 많다. 지식 소비자들이 훌륭한 건 지식 소비 때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저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지식을 소비하기 시작한다. 그랬다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좌절하면 쉽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훌륭한 사람들이 지식 콘텐츠를 많이 소비한다'는 사실에서 도출할 수 있는 사실은 이 사람들이 지식 콘텐츠를 즐긴다는 것뿐이다. 나는 여기에 지식 콘텐츠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발견하는 재미가 지식 소비의 동력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시간 때우기, 취미 생활 목적으로 소비할 수 있어야 변화가 일어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서 변화가 일어날 때에도 확산의 포인트는 늘 재미다)
문제는 어떻게 '재미'를 느끼게 해 줄 것이냐다. 지식 콘텐츠의 재미는 효과이지 목적은 아니다. 눈 뜨고 보기만 하면 재미과 흥분을 느끼는 불꽃놀이가 엔터테인먼트라면, 과정과 경험에서 재미를 느끼는 뱃놀이 같은 것(노를 젓거나 일단 물에 띄워야 함..)이 지식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알게 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지식이 여가가 되고 취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팀은 우선 10에서 100을 아는 재미보다 1에서 10을 아는 재미가 더 강력하다고 보고 있다. 아예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재미가 소비자에게도, 공급자에게도 더 만족스러운 경험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모든 사람이 아예 모르는 영역이나 주제 같은 건 없을 테니, 결국 어떤 것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잘 아는 누군가가 알려 주는 방식의 접근이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