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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김 Apr 08. 2022

닉네임 나비 효과

더 라이즈 오브 '멜감'

고백하자면, 나는 불과 3-4년 전까지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반말을 했다. 나보다 직급이 높으면 존댓말, 아니면 반말을 했다. 이렇게 써놓는 것만으로도 문제 있어 보이고, 약간 부끄럽기까지 한데, 그때는 정말 반말이 좋다고 생각했다. 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선후배 관계를 중심으로 도제식 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온 나는 유경험자가 무경험자에게 빠르게 효율적으로 가르쳐 주는 데에는 반말이 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의제기가 필요 없는, 선배의 경험이 대체로 옳은 세계에서는 확실히 그랬다. 반말이 주는 묘한 친밀감도 일방적인 관계의 어색함을 해소하는 훌륭한 장점이 됐다. 나는 오랫동안, 00야.가 아닌 00씨.라는 호칭은 무섭다고 생각했었고, 존댓말은 거리감을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 시작하겠다며 존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순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반말을 하면서 인생 선배, 업무 선배 역할을 하는 게 버거웠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오만한 잘난 척일 수 있는 반말이라는 방식이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만물박사가 되어 정답을 알려줘야만 한다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앎이라고 했던가; 나도 내가 모른다는 것, 자주 틀린다는 것을 그제야 인지하게 된 거였다.


지금 우리 파이퍼 팀은 서로 닉네임을 부르고 존대를 한다. 사실 닉네임을 부르는 조직 문화는 내 옵션에는 없었다. 그저 안 해본 일이라 어색할 것 같아서였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 의도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에서 닉네임 문화는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했다. 투자사의 인큐베이팅을 받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닉네임을 정하게 된 것이 출발점이 됐다.


놀라운 건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적응이 됐고, 이전보다 훨씬 편해졌다는 사실이다. 장류진 작가 소설에서처럼 닉네임 불러도 대표는 데이비드 님이 되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너무 편하다. 내가 어떤 직책을 갖고 있는지 매 순간 상기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팀에서 모두의 동료로서 하나의 의견을 내고, 또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더 쉽고 자주 불리고, 가볍게 언급되는 것이 이름의 존재 이유 같기도 하다.


호칭 하나 바꿔서 뭐가 바뀌냐, 근본적인 문화가 바뀌어야지! 다들 그런다. 그런데 문화도  바꾸고 호칭도  바꾸느니 호칭이라도 바꾸는  나은  같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귀에 들리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유의미하다. 모두가 느끼는 변화가 있다면 문화가 달라질 가능성도 조금은 커지는 거니까. (아무것도  하는 사람들이  '근본적인 대책' 주문하더라.)


내 닉네임은 멜이다. 음악을 좋아하니까 멜로디에서 딴 건데, 멜젓에서 딴 거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멜젓도 좋아합니다)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동료들이 멜이 받는 영감을 줄여서 '멜감'이라는 이름을 추천해 줬다. 땔감이랑도 비슷하니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막 불리는 이름이 되어 참 좋다.ㅋㅋㅋ큐ㅠㅠ 멜감이라는 이름이 소중해서 아마 멜감으로 팟캐스트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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