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바보 같던’ 웃음

[김한별 아나운서 육아휴직 일기 #58]

by 스타킴 starkim

조금은 슬프지만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면서
예전의 내 ‘바보 같던’ 웃음은 사라졌다.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세상의 모든 행복이 다 내 것이라 생각하던 순간 나오던
나만의 ‘바보 같던’ 웃음이었다.

“부럽다. 넌 어떻게 이 순간에도 그렇게 긍정적일 수 있니?”
조금은 대책 없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이었던 나였기에 가능했던 웃음이었다.
무한 긍정의 에너지.
나를 대변하던 하나의 이미지.

생각해보니
그렇게 ‘바보같이’ 웃었던 게 꽤 오래전이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2018.02.18_IMG_8826.jpg?type=w1
2018.02.18_IMG_8835.jpg?type=w1



생각해보니
그렇게 ‘바보같이’ 웃었던 게 꽤 오래전이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남편이 되면서,
아빠가 되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늘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자유롭게 대처했던
과거의 나와는 달리,
깊은 뿌리를 내리고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졌다.

행복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대책 없는’ 긍정이 때로는 무책임이 될 수도 있는 순간.
웃음에 있어서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가족과 가정에 대해 한번 더 돌아보게 되는 순간.
나는 이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예전보다 안정적으로 변했고
많이 점잖아졌다.

“점잖다는 말은 ‘젊지 않다’의 다른 표현이다.”
언젠가 칼럼에서 읽었던
누군가의 얘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다.
철없고 싶었다.
나잇값 못하고 늘 젊게 살고 싶었다.
가장이 되었다는 것,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젊을 수 없다는 얘기일까?
철없으면 안 된다는 얘기일까?
나는 늘 청춘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나는 늘 청춘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그래서 참 반갑다.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한 사진 속에서
아주 가끔 ‘바보 같이’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저때만큼은
아빠가 아닌,
남편이 아닌,
온전히 나로서 즐거웠나 보다.
나로서 신났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꽤 오랫동안 잊고지냈던
친한 친구를 우연히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그래서
이 사진이
참 반갑다.

그리고
참 낯설다.


2018.02.18_IMG_8831.jpg?type=w1
2018.02.18_IMG_8843.jpg?type=w1




꽤 오랫동안 잊고지냈던
친한 친구를 우연히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르막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