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4]
천사가 우리를 찾아왔다.
봄의 향기가 가득한 어느 날 우리에게 찾아온 천사.
태명을 '봄이'로 지었다.
그렇게 봄처럼 우리에게 찾아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부신 햇살처럼.
봄이가 우리에게 오자 우리의 삶은 많이 바뀌었다.
둘만의 공간에 '봄이'를 맞기 위한 물건들이 늘어갔다.
봄이를 상상하는 시간이 늘어갔고
우리의 대화 역시 봄이를 위한 것들로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몸에서 나타났다.
다행히 태어나기 전부터 '효녀'였던 봄이는
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아내는 몸의 변화에 대해 힘들어하고
또 때로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답답했다.
내가 대신 아파하거나 경험할 수 없는 부분들.
특히 평일에는 지역에서 방송을 하고 있었던 나는 늘 죄인이었다.
아내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마음으로 참 많이 힘들었던 그때.
봄이를 만나기 전
사진을 많이 찍으려고 했다.
봄이는 기억할 수 없지만
엄마 아빠가 이렇게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사진은 늘 어색했지만
예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서 셀프 사진을 찍기도 하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봄이가 오는 설렘을 간직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봄이를 만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시간.
우리는 최대한 즐기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아내를 위해, 그리고 봄이를 위해 처가 옆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를 마치고 봄이를 기다리면서도 참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했다.
좋으면서도 두려운,
걱정되면서도 기다려지는 느낌.
그렇게 우리는 '기분 좋은 두려움'으로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준비를 하던 어느 날의 짧은 일기.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아내가 물었다.
봄이를 만날 날이 다가오면서
'처음' 겪게 될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불안함일 것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던 내가 결혼을 결심한 건
전적으로 '아내' 덕분이었음을 고백한다.
아내와 함께이기에,
부부로 함께 만들어갈 '행복'이 그 당시 내 눈엔 그려졌다.
아내는 몰랐겠지만.
난 가끔 이상한 '확신' 같은 게 들 때가 있다.
너무 당연한 듯한 확신이어서
막상 결과가 나왔을 때 놀라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이미 '확신'과 '만족'의 시간이 지나간 후이기에.
지금도 확신한다.
누구도 아닌 '우리'가 함께라면.
그리고 벌써부터
아빠를 닮아 엄마 뱃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엄마를 닮아 좋은 음악에 감성적으로 반응하는,
봄이와 함께라면
정말 행복하리라는 것을.
난 벌써부터 확신한다.
난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아내를 꼭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