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육아 휴직을 결정하다

[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7]

by 스타킴 starkim

작년 겨울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다.
길을 건너다 제가 차에 치였던 사고였다.
가벼운 사고였지만 교통사고 확인차 '엑스레이'와 '뇌 CT' 등을 찍었다.
크게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별 의심 없이 확인차 찍었던 것이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뇌 MRI'를 한번 찍어보자고 하셨다.
종양으로 '의심'되는 뇌 속의 무언가가 발견되었다는 소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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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령받은 그곳은 연고도 없는 곳이었다.
가족은 모두 서울에 있다.
가족도 없는 그곳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갑자기 듣게 된 얘기에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일단 혼자 입원해서 '뇌 MRI'를 찍고 정밀 검사를 했다.
환자복을 입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무서웠다.
걱정됐다.
윤슬이를 만나기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혈관이 뭉쳐있는' 정도의 해프닝이었다.
(CT 상으로는 종양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었다.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2주 진단을 받고 2주 동안 입원을 했지만
그래도 사고에 비해 몸은 건강했다.
다들 윤슬이를 만나기 전 '액땜' 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정말 다행이었고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하지만 혼자 입원해서 '뇌 MRI'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혹시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난 무엇을 할 것인가?'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확실히 알게되었다.
결론은 '가족'이었다.

남들은 농담처럼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는 주말부부'라고 얘기했지만
삶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함께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 '가족이 함께하는 삶' 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내 삶의 가치와 방향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그 부분에 대해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도 동의했다.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꼭 '아나운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면 다양한 방법과 가능성을 고려했다.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힐 때쯤,
육아휴직을 결심하게 됐다.
확실한 해답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만 흐르는 게 너무 아까웠다.
주말에만 만나는 윤슬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커가는 시간이 정말 아까웠다.

'만약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때,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확실히 알게되었다.
결론은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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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덕분에 힘을 내고 있다.
가족을 위해 용기 내고 있다.
물론 쉽지만은 않지만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에 고민은 적다.
지금 내 모든 선택의 기준은 바로 가족.
앞으로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묵묵히,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내게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지금 아주 건강합니다. 가족을 지키려면 몸도 건강하야겠죠? 걱정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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