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별 아나운서 육아 휴직 일기 #8]
"왜 하필 지금이야?"
"아이는 어차피 기억도 못 할 텐데?"
남자의 육아 휴직이 쉽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어렵게 용기를 내서 육아 휴직을 마음먹더라도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 바로 '시기'였다.
외부의 압력과 눈치를 견뎌내고
어렵게 육아 휴직에 성공하더라도
'과연 언제 육아 휴직을 쓰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시기일까?' 에 대한 의문은 항상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육아 휴직이라는 제도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생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제도이고,
아빠에게도 '제도적'으로는 2년까지 쓸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편하게'만 쓸 수 있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에 시기의 결정은 힘들 수밖에 없다.
육아 휴직을 쓰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왕 쓰는 육아 휴직을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시기에 대한 고민이 가장 힘들었다.
아내와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육아 휴직을 결정했지만 과연 언제가 아내와 아이에게 가장 좋은 시기일까?
아이가 어느 정도 기억할 수 있는 5~6세?
함께 여행도 떠나면서 추억도 쌓을 수 있는 7~8세?
우리의 결론은 '지금 당장'이었다.
지금이 쉽지 않다면 나중에는 더 힘들 수도 있다.
마음먹었을 때 해야 한다.
일단은 시작하자.
가장 중요한 것은 육아든, 집안일이든 '함께' 하자는 공감대였다.
우리의 결론은 '지금 당장'이었다.
일단은 시작하자.
가장 중요한 것은 육아든, 집안일이든
'함께' 하자는 공감대였다.
먼저 육아 휴직을 했던 선배들을 만났다.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다.
비슷한 조건에서 육아 휴직을 했던 선배들도 고민은 많았다.
보통 선배들은 아이가 5~6세 혹은 7~8세에 육아 휴직을 했었다.
선배들은 육아휴직에 대해
'그동안 애들한테 못 해준 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동안 일 때문에 바빠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만회하는 느낌이라는 것.
선배들의 표정에는 자부심이 넘쳤다.
남들은 하지 못하는 '육아 휴직'을 용기 있게 결정한 '좋은 아빠'에 대한 자부심.
인정한다.
그 선배들의 '용기' 덕분에 나도 육아 휴직을 고민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런데 선배들의 다음 말은 조금 놀라웠다.
'좋은 아빠'를 넘어 아내에게도 '좋은 남편'이기 위해
자신은 집안일도 많이 도와줬다는 것.
아내를 위해 집안일도 도울 줄 아는 멋진 남편에 대한 자부심.
조금 놀라웠다.
'집안일은 원래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 아닌가?'
선배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출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역할의 문제였다.
맞벌이로 함께 일을 할 때에는 집안일도 나눠서 한다.
함께 일하니까 집안'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아내가 출산휴가에 들어가고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역할이 나뉘면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육아'는 아내의 몫이 되고
남편은 돕는 역할이 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역할'이 문제였다.
처음부터 '육아'나 '집안일'을 함께 한다면
그 역할이 나뉘는 일도 없겠구나.
'육아'와 '집안일'에 깨어있는 선배들조차 할 수 있는 실수라면
아예 그 가능성을 없애야겠구나.
엄마가 엄마 역할이 처음일 때
아빠도 함께 처음을 경험하면서
같이 성장해나가면 되겠구나.
누구의 '역할'이 나뉘기 전에
처음부터 함께하면 되겠구나.
그때 결심했다.
이왕 어렵게 결정한 육아 휴직,
엄마와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함께하기로.
물론 육아 휴직 시기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아이의 기억'을 핑계로
나중으로 미루는 것보다
마음먹은 '지금 당장' 하는 것으로 결심했다.
미래를 기약하기 보다
지금을 선택한 것이다.
비록 아이가 기억하지 못 할지라도
아이의 모든 시작을 기억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하나 눈에 담고
모든 감각으로 기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엄마가 엄마 역할이 처음일 때
아빠도 함께 처음을 경험하면서
같이 성장해나가면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