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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량 Jul 16. 2024

나의 구원자, 그의 이름은 재택근무

파워i 기획자의 첫 번째 이야기

극 외향 기획자 Stephanie 님의 멋진글(아래 배너)을 보고 나니, 살짝 매우 많이 글쓰기가 부담이 된다.ㅎㅎ 한편으로는 나와 정 반대 입장이었던 그녀의 글을 보면서, 재미있기도 놀랍기도 했고, 나도 하나 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기도 한 마음을 담아 글을 시작해 본다.



돌이켜보면 2019년은 개인적으로 역대급 힘겨운 한 해였다. 회사 다니기 싫어 병이 심해져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여러 상황으로 여의치 않았고, 나를 뽑아주신 임원께서는 여러 번의 전배 기회도 주셨지만, 나는 적응을 잘 못하기 일쑤였다.


이렇게까지 회사를 다녀야 하나, 이 일 자체가 내 적성에 맞나 심각하게 고민도 많았지만, 여러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좋은 동료들 덕에 맛있는 거 먹고, 이야기하고,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그 시기를 꾸역꾸역 넘기고 있었다.


20년도에 옮긴 팀은 여러 상황 속에 주어진 기회였고, 걱정과는 달리 너무 좋은 동료들을 만나,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나름 평화롭게 회사생활을 이어나가던 그때, 심상치 않은 뉴스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걸려 죽고, 약도 잘 듣지 않아 갑자기 사망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제2의 메르스가 아니냐는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국내에도 사망자가 나오면서 주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무하는 건물에 접촉자가 나왔다는 이야기에 출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일도 생기고, 모 회사에서는 코로나에 걸리면 퇴사를 각오하라고 했다는 뉴스가 올라올 정도로 분위기도 이상하게 흘러갔다.


점점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거리 두기가 권장되었고, 내가 다니던 회사도 본격적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느닷없이 시작된 재택은 나에게 축복과도 같은 일이었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갖춰져 있어서, 일어나자마자 5분 만에 출근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고, 점심을 빨리 먹고 고양이들과 누워서 쉴 수도 있고, 퇴근을 1분 만에 하고 바로 침대로 뛰어들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오랜 시간 우정을 다져온 동료들을 자주 못 보는 것은 아쉬웠지만, 코로나 제한이 잠시 풀리면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며, 혹시 모를 감염에 주의하며 만나는 스릴(?)도 있었다.


친한 친구들도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나는 사실 코로나 전후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코로나 전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 가고, 일 마치고 모임이 있으면 어쩌다 한 번씩 어딘가 가고,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 와서 밥 먹고 고양이들과 누워서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집순이인 나에게 집에 있는 순수 시간이 늘어났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었다. 회사에서 택시 타고 5분여 거리의 위치에 살고 있었지만, 출퇴근 준비와 사부작 거리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최소 두 시간(?)은 더 누워 있을 수 있었고, 더군다나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도 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mbti 정식검사에서 i가 90이 넘게 나오는 찐 내향인으로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은 내가 회사 생활을 이렇게 오래 하는 것에 늘 놀라워하고, 나도 기분은 좀 나쁘지만 부인하기 어렵기도 하다ㅎㅎ


집에서 야근하는 거나, 재택이나 큰 차이가 없었던 나에게 오히려 다가온 큰 고난은 재택 회의 시, 카메라를 꼭 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회의 중에는 보통 회의록 작성에 급급하기도 하고, 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게 익숙하기도 해서, 그전에는 사실 카메라를 자의로 켠 적은 거의 없었고, 리더분과 1:1을 한다던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난 카메라를 거의 켜지 않는 쪽이었다.


회의 시 서로 얼굴도 보고, 코로나 기간에 들어온 분들에게 온라인 스킨십 기회를 늘린다는 목적 하에 카메라 켜기는 모든 회의에 강제되는 분위기였고, 캐릭터를 활용하거나, 필터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허용되는 분위기였지만, 이왕 켤 거면 굳이 필터를 써야 하나 싶어 눈물의 카메라 켜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카메라가 강제되지 않을 때도 꼭 화면을 켜는 분들이 계셨는데,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분들에겐 내가 신기했을까?) 나는 왜 화면을 꺼야 된다는 생각을 한 걸까.. 얼굴 외 영역에 다른 배경을 놓을 수도 있게 되면서 사생활 노출 걱정도 적어졌는데 말이다.


재택 4년여 차를 거치며, 여러 재택의 순간들을 지금 하나 둘 다시 생각해 보니, 카메라 켜기의 고난(?)을 빼고 나면, 재택은 집순이인 나의 행복도를 높이는 최고의 제도였으며, 회사 가기 싫어요 병에 걸렸지만 돈은 벌어야 하는 내게 회사를 가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기회였다. 근무 환경도 크게 바뀌지 않아 큰 스트레스 없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더 좋기도 했다.


이렇게 재택을 사랑하던 나에게,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점진적으로 재택을 줄여나가는 이 상황은 생각만 해도 너무 속상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ㅎㅎ 한 번씩 출근하면 집이 그리울 정도로, 재택은 나의 회사생활을 연장하고, 나와 내 고양이가 풍요롭게 먹고살고,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려 행복도를 높여준 나의 구원자였다.






본 글은 미디엄(아래 배너)에서도 격주 월요일마다 연재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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