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시 **여고 교사의 성희롱 발언 및 행위를 고발하는 글이 X에 올라왔다. 학생들은 어느 교사의 부적절한 언행과 행동에 대한 공론화를 인플루언서에게 부탁했고, 해당 글은 이틀사이 190만 뷰에 이르며 학생들과 주변 학부모들 사이 논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낯설지 않았다. 여고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항상 있는 일들이었다.
40년 전에도, 3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마주했다.
40년 전에는 사회적 인식이 낮았으니 그랬다고 치자.
당하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성희롱 예방 교육을 만들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신고 시스템을 마련했다. 종종 뉴스에서는 성희롱 관련 사건이 다뤄지고,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현대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왜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걸까?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한다. 법적으로도 교직원은 성인지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강의실에 앉아 형식적인 영상을 보고 나면 교육은 끝났다. "이러이러한 말과 행동이 성희롱입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으로, 문제의식이 저절로 생길 리 없었다. 가해자들은 성희롱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가해자는 자신이 신고당할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한다. 누가 나를 신고하겠느냐라는 자만과 무지가 문제의 행동을 지속하게 만든다.
이 문제가 지속되는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학교는 수직적 구조가 강한 공간이다. 학생은 교사에게 평가를 받고, 생활지도를 받으며, 대학 입시의 가장 중요한 서류인 학생기록부를 교사들이 작성한다. 졸업할 때까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고, 불쾌한 말을 듣고도 "그냥 넘어가자"는 생각이 먼저 든다.
"괜히 문제를 만들면 졸업할 때까지 불이익을 받을지도 몰라."
"교사들끼리 다 아는 사이일 텐데, 내가 신고하면 결국 보호받지 못할 거야."
"어차피 징계도 제대로 안 나올 텐데, 나만 힘들어지는 거 아냐?"
"3년만 참고 지나가자. 졸업할 때까지만 참자."
학생들은 3년만 참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신고는 위험하고, 침묵은 안전하다고 믿고 선택한다.
교사는 교실로 돌아가고, 학생은 조용히 삼켜버린 불쾌함을 안고 졸업한다.
이번 경우처럼 용기 있는 학생의 노력으로 공론화가 되더라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정직 몇 개월, 감봉, 심하면 해임 정도. 그런데 해임된 교사가 몇 년 후 다른 학교에서 다시 교편을 잡는 일도 허다하다. 학생을 보호해야 할 자리에 다시 서서, 또 다른 학생들에게 같은 말을 건넨다.
가해자는 돌아오고,
피해자는 졸업과 함께 사라지는 구조.
이렇게 사건은 잊히고,
다시 반복된다.
문제는 이 모든 게 이미 너무 익숙하다는 점이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
"그래도 공론화가 되잖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변할 거야."
하지만 정말 변하고 있는 걸까?
40년이 지나도 똑같은 문제가 터지고, 학생들은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다. 변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인식뿐만이 아니다. 구조가 바뀌어야 하고, 시스템이 달라져야 한다.
학교가 학생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성희롱을 한 교사는 더 이상 교단에 설 수 없어야 한다.
신고가 두려운 일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가 되어야 한다.
피해자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10년 뒤, 20년 뒤, 또 다른 학생이 같은 글을 올리는 일을 멈출 수 있다.
X글의 어느 댓글이 가슴에 계속 남는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 그러더니, 제 딸이 다닐 때도 동일하군요. 2대에 걸쳐 피해를 보고 있네요."
아이들이 쏘아 올린 공, 어른들이 반드시 해결해 주어야 할 때이다.
학생들이 용기를 내 공론화했다면, 이제 어른들이 응답해야 한다.
이 문제를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