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성희롱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요즘 선생님 참 열정적이시더라. 여러 가지 신경도 많이 써주시고.”
“불편한 말도 있긴 한데, 그래도 학생기록부에 중요한데 어쩌겠어.”
“입시에 도움이 된다면… 좀 참아야지. 대학은 가야지.”
어느 날, 아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이상한 말을 많이 해.”
"아이들한테 미친년, 썩을 년, 돼지같은년이라고도 불러."
“자꾸 와서 아이들한테 안으라 그래”
"아이들 엉덩이도 툭툭 쳐"
“불편해.”
그 말이 불쑥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 선생님이 니 입시에 얼마나 중요한데’,
‘괜히 문제 생기면 입시 망치는 거 아냐?’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의 말을 조용히 덮어두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넘어간 일이
정말로 괜찮은 걸까요?
부모로서,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는 마음. 모두가 그렇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출발하길, 더 나은 기회를 잡길, 내 아이만은 불리한 경쟁 속에 놓이지 않길 바랍니다.
그래서 때로는 눈을 감습니다.
좀 이상한 말도, 애매한 행동도, 내 아이가 손해 보지 않는 선이라면
그냥 ‘넘어가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넘어감’이 반복되면,
우리 아이는 결국,
무엇을 “넘어가도 되는 일”로 배우게 됩니다.
성희롱도, 부당한 대우도, 비정상적인 권력 관계도
“성적에 도움 된다면 괜찮다.”
이런 식의 암묵적인 교육이,
아이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흔히 말합니다.
“공부는 힘들어도 인성이 바른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라고.
그런데 그 인성은, 아이가 부당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집에서 부모가 보여주는 반응에 따라 결정됩니다.
부당한 일을 겪고 돌아온 아이에게
“괜히 문제 키우지 마.”
“너 지금 고3이잖아”
“그 선생님이 학생기록부 작성하잖아.”
"조금 불편해도, 성적이 더 중요하니까."
"기분 나빠도, 대학 가는 게 우선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 내가 불편한 게 잘못이었구나.”
입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느냐입니다.
입시의 승패는 몇 년 안에 끝납니다.
그러나 한 번의 침묵이 남기는 상처는 평생 갑니다.
공부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도,
잃어버린 자존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자존심과 존엄을 희생하며 얻은 합격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의 실력 쌓기가 아닌 엄마의 돈과 아첨으로 달성한 합격이 내 아이에게 성취감을 줄거라 생각하십니까?
사회에 나가면 무수히 이런 부정, 부도덕, 몰상식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따라다니며 돈으로 매수하고, 침묵을 요구하실 겁니까?
우리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기 위해,
부모인 우리가 먼저 ‘참지 말아야 되는 일’이 무엇인지 짚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