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위에 죄를 덮고 올라선, 부끄럼을 모르는 어른들
지난 3월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교사의 성희롱 발언에 대한 학생들의 제보가 공론화가 되었다. 한 교사는 미친년, 돼지 같은 년과 같은 모욕적인 호칭으로 여학생들을 부르고, 잦은 성희롱 발언과 위계적 관계를 이용해 신체적 접촉을 한다는 여러 증언들은 21세기에 일어나는 일이 맞는지 의심이 들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그 교사의 행위보다 일부 학부모들의 반응이었다.
성희롱 발언도 문제지만, 부적절한 신체접촉 피해 학생이 있어요. 잘못한 건 처벌을 받아야죠.
“입시에 반드시 필요한 선생님인데, 이제 고3이에요.”
“우리 아이는 성희롱 당한 적 없어요, 그런 분 아니에요.”
피해 학생이 있어요. 무작정 감싸는 발언은 불편합니다.
“우리 애 고3이에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사진 보셨죠? 피해 학생이 많아요.
“우리 애 고3이에요, 우리 아이는 기분 나쁜 적 없어요.”
"우리 아이 입시에 필요한 선생님이에요, 문제 삼지 말아 주세요."
당신의 딸도 피해 학생이에요. 범죄 행위는 처벌을 받아야죠.
“우리 아이 고3이에요, 기분 나쁜 적 없습니다."
"아이들을 예뻐하는 열심히 하시는 분이에요."
물론 부모로서 아이의 입시가 중요하다.
학생기록부의 그 한 줄의 기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교사의 평가 의견이 아이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다는 현실도 모두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행동을 외면하고,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아이를 오히려 문제 삼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입시가 누군가의 존엄을 침해한 잘못까지 덮을 만큼 절대적인 가치인가?
‘내 아이’의 이익을 위해 ‘다른 아이’의 고통을 허위라 공격하며 침묵시키는 것은 정당한가?
부정을 감추며 취하는 이득은 무엇인가?
성희롱과 위계적 신체 접촉은 ‘예민함’으로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위법이며,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심각하게 저버린 행위이다.
그런데도 일부 부모는 그 교사가 쥐고 있는 학생부와 입시 서류 작성 권한, 즉 ‘입시 영향력’을 의식해 문제 제기를 꺼릴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잘못을 감추고 옹호하는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것이 방조가 아니고, 공조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방조이고 무엇이 공조일까?
학생들이 불쾌감을 느끼고 어렵게 표현했을 때, 그 목소리를 지지해 주기보다 “괜히 문제 만들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아이에게 무언의 교육을 시키는 셈이다.
“성적에 도움이 된다면, 부당한 일도 참는 게 맞아.”
“내가 느낀 불편함보다 중요한 건, 거짓된 정보라도 다수의 의견이야.”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불리해질 수 있다.”
"소수가 당하는 불공정은 다수의 이익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런 메시지가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그 부모는 아이의 윤리적 기준을 입시 앞에서 무너뜨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의 말보다 행동을 보고 배운다.
불의에 침묵하거나, 편의를 위해 정의를 외면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게 된, 그런 부모들과 그 사고방식에서 키워진 아이들이 많아진 세상이 나는 무섭다.
성비위를 저지른 교사를 감싸는 일은, 분명 그 자녀들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부정을 정당화하고, 범죄가 반복되도록 유지시키는 공범의 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