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

나를 챙기기 시작한 후, 삶이 다시 흥미로워졌다

by Erica

30대와 40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과 육아, 집안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던 시간들이어서인지,
너무 바쁘게 살아서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기억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보통 좋아했던 음악을 떠올리면 그 음악을 들으며 살던 나의 나이와 표정이 함께 따라온다.
어떤 영화는 그 장면을 보던 시기의 내 감정까지 데려온다.
여행의 기억 역시 장소보다 먼저 그때 나의 감정,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가 떠오른다.


그런데 유독 30대와 40대의 기억은 다르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사건들과 아이들의 모습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이들이 몇 살이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또렷한데

그 곁에 있던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분명 그 시간 속에 있었지만
기억의 중심에는 서 있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나를 잊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를 잊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예 확인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통과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 할 수 있는 슈퍼우먼이야.'이라는 생각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의 사소한 흥미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집안 청소를 했을 시간에 음악을 고르고,

일과 연관된 전문 서적을 찾아봤을 시간에 재밌는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는 선택을 했다.
회사와 집안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을 위한 시간을 다시 허락하기 시작했다 해야할까?
그 일들은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았지만

하루를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인생이 다시 재미있어졌다는 말은
즐거움이 늘어났다는 뜻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선택권이 다시 생겼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해야할 일들로만 하루를 가득 채우던 일상에서,

이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을 할 때 즐겁게 느끼는 지를 고민해보며,

하루에 조금씩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

누구도 막지 않았던 그 시간은 사실 내가 나 자신에게 오랫동안 금지해왔던 것이었다.

그 허락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결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나에게 돌아간다’는 말은

그건 어디선가 잃어버린 진짜 나를 찾아내는 일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일도 아니었다.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나를 하루의 중심에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일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돌본다.
삶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안에서
나의 취향과 감각이 하루의 일부를 다시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하루는
조금씩 나를 기억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다시 나에게 돌아가는 길은
완성되는 길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자주 나를 놓치고,

일과 육아, 집안일에 지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온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다시 잃어버린 나를 찾는 길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