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챙기는 작은 선택들이 만들어낸 변화
나를 돌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도 삶이 곧바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피곤했고, 마음은 쉽게 가라앉았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 상태를 그대로 두지 않기로 했다는 것,
아주 작게라도 나를 챙기는 쪽으로 행동을 옮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처음엔 하루에 10분이었다.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시간,
아무 역할도 요구받지 않는 시간.
하루 딱 10분.
그 10분이 삶을 바꿔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나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이후, 30분이 되었고, 어느 날은 한 시간이 되었다.
무언가 대단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핸드폰과 족쇄처럼 손목에 채워져있던 스마트워치를 내려두고,
하루 산책을 일정처럼 강제로 배정해 비가 오든 말든 걷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하려 애쓰지도 않았고,
의미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하루에 한 번은 집안일보다 걷는 일을 우선순위로 놓자는 나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특별한 것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걷는 동안만큼은 나를 방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남았다.
주말이면 식구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산으로 향했다.
식구들이 자는 시간은 일정이 흔들릴 가능성이 거의 없어 유일하게 내 루틴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주말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힘들었고,
등산 역시 쉽지 않았다.
정상에 올랐다고해서 모든 고민과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선택한 내가 만족스러웠다.
적어도 나를 외면하지는 않았다는 위로감과 뿌듯함이 나를 가슴뛰게 만들었다.
이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괜찮아졌기 때문에 나를 챙긴 게 아니라,
나를 챙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부서진 틈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완전히 회복되지도,
단단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 10분, 30분, 한 시간씩
나를 위해 비워둔 그 시간들이 내 마음 안에 작은 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조용히 빛이 스며들었다.
“나는 지금, 나를 돌보고 있다”는 감사한 마음도 쌓였다.
아직 나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를 챙기려는 이 작고 반복적인 노력이
바로 빛이 들어오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부서진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은
나를 단번에 살려내지 않았지만,
나를 무너지지 않고 계속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