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의 순간에서 오는 자각

나를 돌보라는 신호

by Erica

요즘 들어 회사, 집에서 예민해진 나를 자주 발견한다면?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에도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고,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과하게 몰아붙인 나를 발견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상황은 비슷해서, 아이의 말 한마디에 괜히 서운해지고,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쉽게 요동친다. 겉으로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하루인데,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오래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틈을 찾아 올라오고, 묵묵히 버티던 마음이 이제는 나를 향해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몸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어깨가 자주 결리고, 두통이 잦아지고, 별일이 없는대도 새벽에 잠이 깨는 일이 많아지고, 속이 자주 불편해진다. 감정은 애써 내가 누르고 있었지만 몸이 먼저 말하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감정의 진동과 몸의 통증 속에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아, 지금 나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구나.


그 무너짐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붕괴가 아니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괜찮은 척’과 ‘해야 하는 일’의 틈 사이

오래 미뤄두었던 마음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래 미뤄둔 나의 마음이 드디어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버텨왔다.

“이 정도쯤은 다 해야지”,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나만 참으면 다들 편해지니. 그냥 내가 하자.”
이런 말들로 하루를 채우며 살아왔지만, 결국 그 안에는 나를 돌보지 못한 시간들이 차곡히 쌓여 있었다.


무너짐은 그 시간을 멈추게 했다.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얼마나 오래 나 자신을 외면해왔는지
비로소 깨닫게 한 계기였다.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누군가의 동료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나’가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이제는 완벽하게 버티는 대신,
조금은 느슨하게 나에게 공간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피곤할 땐 솔직히 쉬고, 감정이 올라오면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바라본다.
그리고 하루의 끝에서 조용히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나는 괜찮았는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 생각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졌다.

무너짐은 나를 약하게 만든 사건이 아니라, 나를 돌보게 만든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나를 챙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되뇌어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자각의 끝에는 언제나 회복이 있다.
그 회복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나를 돌보는 작은 노력’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제는 믿게 되었다.


오늘도 몸과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라 신호다.
몸이, 마음이,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증거.

그러니 그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자.

그건 돌봄이 시작되는 가장 솔직한 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