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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 vs 게으른 사람

이중 기준의 덫

by Erica

여성에게 일은 늘 ‘양날의 검’이다.
회사를 다니면 ‘아이를 돌보지 않는 나쁜 엄마’가 되고, 회사를 그만두면 ‘놀면서 남편 돈 쓰는 게으른 사람’이 된다.

무엇을 선택하든 비난의 방향은 늘 여성 쪽을 향한다.

한쪽에서는 “요즘은 엄마들도 사회생활을 해야지”라며 경제활동을 장려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엄마가 회사다니는 집 아이들은 티가 나”라고 말한다.
그 사이에서 여성들은 늘 균형을 잡으려 애쓰지만, 결국 양쪽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는 여전히 돌봄을 여성의 기본값으로 전제한다.
그 위에 ‘일’이라는 옵션을 허락하지만,
그 대가로 여성은 두 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
직장에서는 가족이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도록 싱글처럼 일해야 하고,
퇴근하면 집 안의 모든 일을 다시 감당해야 한다.
일터에선 프로페셔널을, 집에서는 헌신적인 엄마를 기대받는다.
어느 한쪽이라도 부족하면
“욕심이 과하다”거나 “역시 여자는 안돼.”라는 말이 돌아온다.


문제는 그 기준이 ‘선택’의 문제로 포장된다는 것이다.
“아이 낳고도 일하는 건 본인 선택이잖아요.”
“그럼 왜 경력단절을 감수했어요?”

이 말들은 겉으로는 존중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모든 결과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일을 해도, 쉬어도, 어떤 선택이든 ‘네가 결정했으니 감당하라’는 식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선택의 자유가 아니라,
선택 이후에 따라붙는 사회적 평가의 불균형이다.


여성의 노동은 늘 ‘가정’이라는 기준에 의해 평가된다.
남성이 야근하면 ‘열정적’이라 하고,
여성이 야근하면 ‘가정이 불안정하다’고 한다.
남성이 일을 위해 가족의 자리를 비우면 ‘가장의 책임감’이라 칭찬받지만,
여성이 일을 위해 가족의 자리를 비우면 ‘나쁜 엄마’로 비난받는다.
같은 행동이 정반대의 언어로 해석된다.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는 여성은
‘아이를 맡겨놓고 일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경력단절 이후 다시 일터로 돌아오면
‘놀다온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심지어 일을 그만두고 가사에 집중하면
‘요즘 같은 세상에 놀고먹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중 기준은 단지 불공평한 잣대가 아니라,
여성이 어떤 위치에서도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다.

결국 여성의 삶은 늘 “증명”의 과정이 된다.
일하는 이유를, 쉬는 이유를, 선택의 이유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일은 생존이고, 쉼은 회복이다.
그 어떤 것도 변명이나 사과의 언어로 포장될 이유가 없다.

여성의 선택은 언제나 사회가 정한 ‘정답’이 아니라
삶의 조건에 따라 내린 현실적인 결정일 뿐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전히 그 결정을 시험하고 평가한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이기적이라 하고,
낳으면 일에 덜 집중한다고 말한다.
결국 이런 모순된 구조 속에서
지적인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은
무책임한 외면이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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