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겨울, 얼마나 가벼워졌을까?
박완서의 단편을 묶어 출판된 「배반의 여름」에 수록된 첫 작품.
「겨울나들이」
겨울 나들이는 중년의 여성이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특별한 계기나 거창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일상에서의 그저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는 마음에 가까운 즉흥적인 출발이었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시간에 대한 갈망이 그녀를 떠나게 했다.
정말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서울을 떠나보고 싶다거나
남편 곁은 떠나보고 싶다거나
하느니보다는 여직껏 집착했던,
내가 이룩한 생활을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훨훨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주인공은 혼자라는 사실에서 자유를 기대하고 떠났다.
가족도, 책임도, 익숙한 역할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자신으로 존재해 보고 싶었던거겠지.
그러나 막상 여행지에 도착한 그녀의 마음은 기대만큼 가볍지 않다. 혼자라는 자유는 곧 어색함이 되고, 해방감은 곧 공허함을 가져다 주었다. 주변의 시선, 낯선 공간에서 느껴지는 불안, 그리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생각들까지, 일상에서 벗어났음에도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는다.
고속버스에서 낯선 거리에 내리자마자
추위와 고독감이 엄습했다.
눈앞의 풍경에
울먹울먹 낯가림을 했다.
훨훨 자유롭다는 기분조차
이 온천장 거리만큼이나 생소하고 싫었다.
「겨울나들이」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중년의 여성이 흔하게 느끼는 "떠나고 싶다" 라는 생각을 실천해 충동적인 혼자 겨울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내용이다. 하지만 박완서는 이 짧은 여정을 통해 ‘혼자 있음’이 곧 자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한 것일까?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사라지지도 않고,
관계를 잠시 끊어낸다고 해서 자기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이유는, 여느 소설처럼 극적인 만남이나 눈에 띄는 깨달음,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사건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우리가 항상 그렇게 느끼듯이, 자유롭지 못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으러 떠났지만, 그 자유가 생각보다 불편하고 낯설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하게 할 뿐이다. 여행에서 느끼는 실망과 당혹감이 과장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어떤 여행 소설보다도 더 마음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남성들도 그러는 지 모르겠지만, 많은 중년의 여성들이 혼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혼자 떠나면 좀 나아질까?’,
‘환경이 바뀌면 숨이 트일까?’.
그러나 이 소설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장소였는지, 아니면 삶의 태도였는지.
소설의 끝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거라는 뉘앙스로 조용히 마친다.
그 여행을 통해서 주인공은 자유를 얻었다거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벼워졌다거나,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거나 하는 거창한 마음은 아니다. 하지만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어보이지만, 그 여행이 헛된 시도만은 아니었다라는 메세지는 강하게 준다.
박완서의 「겨울나들이」는 떠남을 찬미하지도, 혼자임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중년의 시선으로 자유와 고독을 냉정하게 바라볼 시간을 주는 듯 하다.
언제나 그렇듯, 박완서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언젠가 혼자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소설이 문득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