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을 도시문제 해결사로 만드는 것이 스마트시티 기술의 핵심
스스로 생각하는 똑똑한 기계들이 곳곳에 말없이 숨어있다. 건물에 다가오는 사람을 감지하여 문을 자동으로 미끄러지듯이 열며, 복도를 따라 걷는 사람을 앞서가며 전등을 밝히면서 길을 인도한다. 더운 공기를 감지하여 자동으로 에어컨을 작동시키거나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감시카메라가 낯설지 않다. 스마트한 센서와 데이터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도시는 시민의 라이프스타일마져 변모시킨다. 출근하기 전 집에서 버스 도착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거나, 꽉 막히는 혼잡한 도로를 피하고자 전동킥보드를 어플리케이션 하나로 이용한다. 안테나를 통해 원격으로 교통신호등을 통제하고, 아날로그 눈금판을 디지털숫자로 변모시킨다. 감시카메라의 렌즈 뒤로 수많은 영상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알고리즘은 유령처럼 숨어서 기계학습을 수행한다. 스마트시티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모습들이다.
◆ 도시혁신 플랫폼으로서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스마트시티를 첨단 기술이 무장된 도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스마트시티에 대하여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첨단 솔루션 집적 도시’로 정의한 유럽의회나, ‘최첨단 기술로 도시 기능을 서로 연결한 지능도시’로 규정한 IBM 같은 기업도 이러한 기술 중심의 이해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최근 앞서나가는 세계 도시들이 기술 중심의 스마트시티를 넘어 ‘시민을 중심에 두고 도시설계와 운영에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여 똑똑하고 따뜻하며 지속 가능한 친환경 도시’라는 좀 더 확장된 개념의 스마트시티를 받아들이고 있다.
2020년 11월 9일 G20산하 <스마트시티 얼라이언스>에 소속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책임자들이 화상으로 만났다. 이 회의는 공간적 동시성이라는 측면과 논의하고 있는 주제 측면에서 두 가지 놀라움을 준다. 첫 번째는 스톡홀름, 헬싱키,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 바르셀로나, 대구 등 다른 장소와 시간대에 있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소위 ‘비동시성의 동시성’ 경험이다. 두 번째는 “긍정적인 영향을 만드는 혁신도구, 스마트시티”라는 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스마트시티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스마트시티는 하나의 큰 원안에 있는 ‘도시경제성장’과 ‘시민행복’이라는 두 개의 작은 공이 공존하며 성장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술 중심에서 도시를 혁신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려면 스마트시티는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 내고,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필수 요건인 경제화·민주화·위기대응을 지원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 공동체 기여자인 시민을 돕는 스마트시티
먼저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 내려면 행정이 시민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환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도시정책은 행정 관료와 전문가에 의해 주도되어 왔다. 이때 시민은 소비자, 노동자, 유권자라는 이름으로 정책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 도시공동체의 기여자라는 인식은 거의 없다. 위기에 강하고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행정시스템은 ‘모성적 행정’에 가깝다. 시민을 열두 살 아이 정도로 보고 보호와 통제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공서비스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 전달체계를 지닌다.
하지만 시민은 과연 그런가? 시민은 도시경제 순환과정에 단순 참여자가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를 돌보고(Care), 무언가 만들며(Craft), 이치를 깨닫고(Cognition), 때론 창조적이면서(Creative) 복잡성(Complexity) 문제를 다루는 존재다. 도시혁신 도구인 스마트시티는 이러한 시민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가령 생활속 실험실(리빙랩)을 통해 도시문제를 시민 스스로 발굴하고 첨단기술이나 적정기술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이 새롭게 등장한 기술은 인간의 반복적인 작업을 도와주고 시민들은 창의적이고 복잡한 일에 더 집중한다. 시민을 도시 문제해결의 기여자로 끌어내어 것이야 말로 혁신이 쉬운 도시로 가는 지름길이다. 혁신이 쉬운 도시란 시민 누구라도 도시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관련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해결책을 빠르게 찾아내며, 생활속 실험실을 통해 해결책을 실험하고, 검증된 해결책이 도시 전체에 쉽고 빠르게 확산되는 도시환경을 말한다.
암스테르담에는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스마트시티 홈페이지가 있다. 여기는 시민들이 문제와 해결책을 제안하는 창구가 있다. 시민 제안에 ‘좋아요’가 100개 이상 되면 도시 행정에서 반드시 검토하여 실행여부를 결정한다. 시는 작은 실험예산을 투입하여 실제 사용자와 연구기관, 기업이 함께 리빙랩 방식으로 해결책을 실험하고, 효과성이 높으면 도시에 대규모 확산을 지원한다. 자발적인 이웃과 지역화폐를 연동하여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WASTED 프로젝트, 저전력 블루투스를 활용해 반경 50~70m 범위 안에 있는 사용자들에게 위치 정보나 메시지를 전송하고 모바일 결제 등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거리 통신 장치인 비콘(beacon)을 활용해 마을경제를 활성화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명해졌다. 이것이 바로 혁신이 쉬운 도시이자 시민을 문제해결의 기여자로 앞세우는 스마트시티의 모습이다.
◆ 지속가능을 돕는 스마트시티
도시혁신을 위한 스마트시티의 두 번째 역할은 도시의 지속가능을 돕는 것이다. 스마트시티는 시간에 따라 다르게 불렀으며, 꾸미는 말도 달랐다. 이십여 년전 첨단기술 인프라로 만들어진 도시를 유비쿼터스시티로 불렀지만, 오늘날 스마트시티는 오픈 에자일 스마트시티, 팹시티, 포용적 스마트시티, 바이탈리티 시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이러한 이름은 모두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관련이 있다.
공동체가 지속가능하려면 세 개의 필수 시스템이 필요한데, 도시혁신을 지향하는 스마트시티는 이러한 시스템을 지원한다. 첫째는 먹고사는 문제이다. 이는 도시경제시스템과 깊이 관련 있다. 산업 번영과 직업 기회, 기업가정신을 가진 스타트업이 서식하는 경제생태계를 스마트시티는 지원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위한 두 번째는 민주화 시스템이다. 민주는 말 그대로 자기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고 소수의 의견이라도 소외되지 않는 환경을 말한다. 스마트시티는 도시문제를 함께 해결해가는 민주주의 실험환경, 도시의 공유자산 활용, 디지털 리터러시, 시민참여형 리빙랩, 도시문제관리 등을 기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지속가능 도시의 세 번째 요소는 위기대응시스템이다. 도시는 코로나, 전쟁, 지진처럼 갑작스런 위기상황을 대응하고 회복하는 기반이 필요하다. 스마트시티는 행정과 시민력의 이인삼각 협력을 만들고, 집단지성과 데이터 공유를 통해 민첩하게 도시의 회복을 도와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