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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 Mar 28. 2023

스마트시티의 행동과학, 스마트 넛지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는 늘 사람 간에 긴장과 갈등이 늘 존재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계층간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 각 층별은 같은 도시에서 구별된 자기만의 공간을 점유하는 문화로 변하고 있다. 가령, 단위 면적당 카페 수가 제일 많은 도시에서 돈이 많은 사람은 스타벅스에 들어가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메가커피에 간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도시에서 계층간 갈등의 원인으로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공짜로 머무를 수 있는 소셜믹스 도시 공간'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뉴욕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으며 브로드웨이 950m 구간에 벤치가 170개나 있다. 반면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에서 중앙파출소까지 벤치는 30개 정도이며, 중앙로역에서 반월당까지 겨우 9개뿐이다. 뉴욕에서는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평평한 센트럴파크에 누울 수 있고,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브라이언 파크에서 토요일 여름밤에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를 참고삼아 경기도가 2019년 ‘쉼이 있는 도시 공간조성’을 목표로 도내 밀집지역에 벤치를 확충하는 정책을 펼친 적이 있다. 공공도서관, 벤치, 공원, 하천 같은 소셜믹스 공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공통의 추억을 만들고 계층간 갈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설치된 간이 의자

이처럼 시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 행동을 바꾸는 방식을 넛징(nudging)이라고 한다.

넛지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라는 의미로, 2008년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에 의해 대중화된 이론이다.드러나지 않고 행동을 바꾸기 위한 넛지는 정부사업, 의료, 모금 활동 등 우리들 삶의 영역에 이미 많이 퍼져있다. 넛지를 넣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소프트웨어적인 방법으로 세금 같은 규제정책이나 게이미피케이션, 혹은 인센티브정책 등을 이용해 시민들의 행동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적인 방법으로 공간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울산경찰청 앞 3D 횡단보도

최근 스마트시티에서도 넛지는 높은 관심의 대상이다.  스마트시티는 도시문제와 시민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공간과 디지털기술, 그리고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도시는 ‘환경, 생물다양성과 공존하며, 공간(도시)을 재해석하고, 시민력을 높이는’ 상호작용 수준을 선택함으로써 똑똑한 도시의 수준을 결정한다. 다시 말하면,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시민행동이 도시 문제해결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할 때 성숙한 스마트시티로 진화할 수 있다.


그래서 성숙한 스마트시티는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여 시민들의 행동을 바람직한 형태로 바꾸고 긍정적인 도시 가치를 함께 창출하는, 소위  ‘스마트 넛지(smart nudge)’ 를 다양한 스마트시티 솔루션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스마트 넛지는 우리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범죄예방환경설계, 3D횡단보도, 스마트폰 사용자 유저인터페이스 등 스마트시티의 주요 솔루션과 세부기술에 사람이 행위를 선택하는 디자인이 숨겨져 있다. 특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스마트 넛지을 이용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로 정평이 나 있다. 여기 두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먼저 ‘지속가능한 이웃(Sustainable Neighborhood)’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암스테르담이 2025년 탄소배출량을 90년 대비 40% 수준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위해 스마트 온도 조절장치를 설치하여 생활패턴을 분석하고 난방에너지 소비를 감소도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는 에너지 소비 절감을 위해 지역 주민들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프로젝트로, 시민들이 스마트미터기 등을 통해 구체적인 에너지 소비량을 확인함으로써 자발적 에너지 절약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 암스테르담 쥬젠벨드(Geuzenveld)지역에는 스마트 미터기 500개와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60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민간 공공이 파트너십을 구성하여 추진한 대표 사례이다. 암스테르담 시정부와 민간기업(GEO, Onzo), 컨설팅기관(Favela Fabric), 전력망 회사(Liander, Alliander), 주택회사(FarWest, dekey), 연구기관암스테르담 대학교 등 다양한 참여자들이 협동하여 추진하였다.

지속가능한 이웃(Sustainable Neighborhood) 프로젝트의 스마트 미터기

또 다른 스마트 넛지 사례는  ‘쓰레기(Wasted) 프로젝트’ 이다. 이 프로젝트는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인 CITIES Foundation이 시작하였다. 이 프로젝트의 스마트 넛지 장치는 바로 보상 시스템(WASTED Reward System)에 숨어 있다. 이 프로젝트에 이웃으로 등록하면 시민에게 12개의 플라스틱 분리봉투와 QR스티커가 배부된다. 플라스틱 봉투에 쓰레기를 모은 후 QR스티커를 붙이고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지역화폐인 코인이 지급된다. 이 코인으로 시민들은 책이나 커피를 구매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게임기법(gamification)을 가미하여 상호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보상시스템을 통한 스마트 넛징를 통해 사람들의 구체적 행동변화를 만들어 낸다. 


스마트 넛지 기법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응용되지만 일부 비평가들이나 윤리학자들은 넛지 이론에 도덕성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은 넛지가 제공하는 특정 메시지와 인위적 유도 방식은 시민의 자율성을 잠재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들은 넛지 이론이 자율성을 감소시키고, 존엄성을 위협하며, 자유를 침해하고, 복지를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스마트시티 설계자는 비평가들이 제기한 넛지의 도덕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몇 가지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넛지는 투명해야 하고 상대방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 또한 넛지를 회피하고 싶다면 언제든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넛지 이론은 사람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한다는 전제를 바탕에 두고 있다 즉, 사람은 넛지의 개입이 있어도 결정 자체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넛지를 시행하기 전에 넛지를 통해 유도된 행동이 시민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는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를 사전에 충분히 공유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기반 스마트 기술은 이 부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다수의 시민이 참여 가능한 스마트시티 기술이 넛지 적용에서 부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넛지 이론에 도덕성 문제, "우리의 의사결정은 조작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행동변화를 위해 스마트 넛지를 어떻게 디자인하여야 할까? UNIST 조기혁 교수는 스마트 기술을 적용하여 시민들의 행동변화를 유도하는 스마트 넛지를 위해 단계별 접근을 권장한다.

첫 단계는 변화할 목표행동(target behavior)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어떠한 수준에서 넛지를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설계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시민은 스마트시티 거버넌스에 참여하며 결정을 내리는 주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행동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이때 참여자(시민)들이 스마트폰같은 쌍방향 디지털기술을 이용하여 공간과 환경 그리고 개인행동 자료를 주체적으로 수집하고 공유함으로써 집단지성을 만든다. 스마트 넛지에서 집단지성은 시민들 스스로 행동변화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촉매제이다.

마지막 단계는 행동 데이터 자료를 분석하고 넛지를 통한 개입이 얼마나 행동 변화에 효과적이였는지를 평가

하는 과정이다.


스마트 넛지는 웨어러블 스마트기기, 대화서비스나 서비스 로봇 같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지원도구, 집단지성을 만드는 플랫폼 등 다양한 디지털 인지기술과 장치를 사용하여 ‘시민의 행동 선택’을 돕는다. ‘시민의 행동 선택’은 선택할 콘텐츠에 대한 역동적인 접근 방법, 선택한 행동을 했을 때 경험하는 감정과 인식, 나아가 자동화된 행동을 유도하는 지속적인 동기부여 등에 관한 정교한 설계로 만들어 진다. 선택된 행동은 결과적으로 시민에게 사회적 문제 해결능력을 증대하고, 주어진 미션에 대한 성취감을 높이며, 사회적 결속 같은 스마트시티의 사회적 가치를 제공한다. 


도시 시민의 행동은 복잡하다. 스마트시티는 기술, 사람,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메카니즘이다. 시민의 행동 변화없이 첨단 기술과 서비스만으로 스마트시티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민들의 바람직한 행동변화를 만드는 스마트 넛지를 통해 지속가능하며, 공통의 추억을 풍성하게 공유하는 건강한 도시가 되면 좋겠다. 


■ 참고  

유현준(2021), 공간의 미래, 을유문화사

리처드 탈러·캐스 선스타인(2022), 넛지:파이널에디션, 리더스북 

조기혁(2019), 스마트 도시를 위한 넛지 기술의 적용,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2019 도시정보 Vol.453.

이혜수(2020),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본 넛지 디자인, 한국 영상학회

LGCNS(2020),시민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도시 암스테르담(2020)

비영리스타트업(2018),암스테르담 Wasted Project

EMP(2022),넛지 이론과 사례

Geuzenveld Smart City :Sustainable Neighborhood

Oscar H. Gandy(2019),Toward a political economy of nudge: Smart city variations, Information, Communication & Society, Volume 22, 2019.

Cristina Mele(2019), Smart nudging: How cognitive technologies enable choice architectures for value co-creation, Journal of Business Research, Volume 129, Pages 949-960. 

Sofia Ranchordás(2020),Nudging citizens through technology in smart cities, International Review of Law, Computers & Technology, Volume 34, 2020.


■ 도시간 휴식공간 비교

뉴욕 같은 경우에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공원이 있으며 브로드웨이 950m 구간에 벤치가 170개나 있다. 반면 대구 동성로 한일극장에서 중앙파출소까지 30개 정도 있으며, 중앙역에서 반월당까지 겨우 9개뿐이다. 경기도 수원의 나혜석 거리의 경우 15m 당 1개의 벤치가 설치돼 있다. 5m 마다 벤치가 있는 미국 브로드웨이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경기지역 도시공원은 4410곳(1억1619만8000㎡)으로 도민 1인당 휴식 공간은 9.6㎡에 불과하다. 베를린 27.9㎡, 런던 26.9㎡, 빈 21.7㎡, 뉴욕 18.6㎡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 암스테르담의 스마트 넛지 사례들

암스테르담이 탄소배출량 저감 프로젝트 중 ‘카고호퍼’라는 프로젝트도 있다. 카고호퍼 프로젝트는 암스테르담 스마트시티에서 시민 아이디어로 시작된 사업이다. 2014년 대형 전기화물 차량인 카로호퍼를 이용해서 도시사업자에 효율적으로 화물을 운반함으로써, 친환경적이고 스마트한 운송수단을 제공해 도로 혼잡을 완화하고 있다. 암스테르담시를 주축으로 민간 운송, 유통회사, 건설회사, 보관 및 이삿짐 회사, 전기차량제조업체인 5개 기관간 협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넛지이론 적용들

2008년 미국은 이 이론의 개발자 중 한 명인 캐스 선스타인을 정보 및 규제 사무국의 관리자로 임명했다. 2012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정부는 넛지 유닛을 설립했고, 2020년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은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넛지 이론을 사용했다.

기업들 역시 사업에서 넛지 이론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사고 없는 문화"를 성취하는 일차적인 목표를 가지고, 종종 건강과 안전에 적용된다. 한동안 실리콘 밸리의 일류 기업들은 직원들의 전반적인 만족도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넛지 이론을 적용했다.

넛지 이론은 의료 분야로 진출했고, 리더들은 넛지 이론을 사용하여 의료 전문가들이 특정 분야에서 더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예를 들어, 넛지은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서 손 위생을 향상시켜 의료 관련 감염의 수를 줄이는 데 사용되어 왔다. 또한 수액 과부하로 인한 합병증을 줄이기 위해 수액 관리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또한 넛지는 모금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될 수 있고 사용되어 왔다. 넛지 이론을 사용하여 기부금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확실한 변화가 있다. 예를 들어, 기부자를 자동으로 등록하여 지속적인 기부를 하도록 함으로써 기부를 쉽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잠재적인 기부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거나, 개인화된 메시지를 제공하거나, 그들의 개인적인 관심사에 집중함으로써, 기부를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 기부자의 기부금을 늘리기 위해 넛지 이론을 사용하는 것은 윤리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는데, 그들은 캠페인을 기획할 때 기부자의 자율성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넛지이론에 대한 비판과 똑똑한 해결책

넛지가 가지는 도덕성 비판에 대하여 캐스 선스타인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일정 수준의 선택 설계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한 비판이론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활동에서 불가능한 가치중립을 요청하기보다, 시민 네트워크의 집단지성을 통한 공동의 목표설정과 개입의 방식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넛지에 대한 올바른 접근일 것이다.

넛지 이론에 대한 또 다른 공격은 그것의 효과를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2021년 말에 넛지 이론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포괄적인 메타분석을 수행했다. 이 메타분석의 결과는 넛지 이론이 가지는 효과성을 자신 있게 보여주었다. 이 기술을 사용해 온 정부와 기업들에게 희소식이었지만, 곧이혀 발표된 연구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앞서 연구한 메타분석이 상당한 출판 편향의 영향을 받았으며, 넛지 이론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편 시민 행동 데이터 자료를 분석하고 넛지를 통한 개입이 얼마나 행동 변화에 효과적이었는지를 확인하는 평가를 통해 넛지의 효과성을 의심하는 비판자들을 불식시킬 수 있다. 자료 기반 넛지가 효과적인 이유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행동과 공간 자료를 분석한다는 점 있다. 넛지 개입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행동 변화에 관한 정량적 자료뿐만 아니라 넛지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정성적 접근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넛지의 효과측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넛지 이론의 불확실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다른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접근법과 함께 사용되어야 한다. 인간의 의사 결정과 행동은 복잡하다. 인지심리학자 마그다 오스만의 표현처럼, “어떻게 하나의 접근법이 선택을 바꾸기를 바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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