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스마트시티 구축하고 있는 도시를 방문하거나 화상으로 회의를 할 기회가 많다. 런던(영국)에서부터 캄팔라(우간다)까지 스마트시티를 지향하는 모든 도시는 유사한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인다. 그런데, 스마트시티의 전면에 무엇을 소개하느냐에서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 모든 도시는 자기 스타일의 스마트시티를 추구한다
항조우, 쿠알라룸푸르, 자카르타와 같은 기술과 인프라를 중심에 둔 스마트시티는 가장 먼저 통합관제센터를 보여준다. 도시의 스마트시티 관리자는 도시교통이 어떻게 인공지능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리되는지, CCTV 영상데이터가 얼마나 빨리 처리하는지를 분할된 대규모 스크린 앞에서 열변한다. 한편 암스테르담, 헬싱키, 바르셀로나, 런던 같은 스마트시티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그들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도시 목표와 이러한 목표를 함께 해결해가는 시민의 커뮤니티 활동을 제시한다. 이때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도시 목표는 기후나 인구문제 같은 전 지구적 어젠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스마트시티의 핵심 명제는 그 주체가 시민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스마트시티의 가장 단순한 정의는 ‘스마트한 시민이 사는 도시’이다. 시민을 주체로 보는 것은 하향식으로 행정서비스를 공급받는데 익숙한 우리에겐 매우 낯선 일이다. 최근 들어 숙의민주주의 일환으로 온라인으로 청원을 하거나 주민참여예산제, 시민원탁회의 등을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가지만, 여전히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co-working) 것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우리의 행정시스템은 멀리 보면 조선시대와 일제 식민지, 그리고 해방 공간을 거치면서 고착된 견고한 체제이다. 우리에겐 모든 혁신에서 행정이 앞장서야 한다는 강박이 존재한다. 시민들도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요구보다는 ‘왜 행정이 해결 안 하냐?’는 민원요구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다 보니 행정은 행정대로 과잉된 친절을 강요받으며 피로도가 높아지고, 시민과 행정이 대척점에서 경쟁과 감시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렇게 해서는 시민이 도시공동체의 기여자이자 문제 해결의 주체인 ‘전환의 시대’를 건널 수 없다. 행정이 시민을 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하고, 시민들도 시대가 요구하는 ‘스마트시민’으로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한다.
◆ 스마트시민이 만드는 스마트시티
스마트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깨끗하고 깔끔하며, 잘 차려입은(clean, tidy, and well dressed), 재치는 지능(a quick-witted intelligence), 독자적인 행동을(independent action)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빠르고 활발한 (quick and brisk), 똑똑한, 센스가 있는, 영리한 (intelligent or sensible, clever), 문제를 해결하는’등의 다양한 의미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스마트 시민은 “문제 해결 역량을 가진 재치 있고 지혜로우며 독립적인 행동가”를 말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최첨단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스마트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정의
그렇다면 스마트시민은 도시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그들은 도시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도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행정과 경제활동을 주고받는 복합 생태계이기에 다양한 도시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문제에 대한 공동운명을 지닐 수밖에 없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주기적으로 출몰하면서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 문제를 발견하는 스마트시민은 질문을 바꾸는 힘이 있다. 가령 청년의 역외유출을 막기 위해 추진하는 다양한 도시정책 앞에서 ‘청년이 떠나는 도시가 과연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고, 4차 산업혁명·코로나19·기후변화의 삼중 파고 앞에서 갈 길을 헤매는 방역정책에 대하여 ‘지구 상에서 감염병의 완전 퇴치가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이 바뀌면 문제 정의도 달라지고 해결책도 다르게 처방된다.
대부분의 도시문제는 풍선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삐져나온다. 고산지대에 거주하는 독거노인들을 위하여 상수도 원격 검침기를 만들면 검침원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CCTV 교통영상 데이터를 분석하여 인공지능기반 연동신호체계를 만들면 교통흐름은 원활해질 수 있지만 자가운전 차량과 탄소배출량이 늘어나 도시의 새로운 위험요인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문제는 숙련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합의와 반복적인 실험으로 최적안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스마트시민은 바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잘 이해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 기술과 인프라 중심 정책의 악순환 루프
여전히 스마티시티가 새로운 기술이 마음껏 구현되는 공간이라는 의미는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 기술과 인프라는 중요하다. 스마트 기술은 스마트산업단지, 스마트농업단지 등으로 산업의 가치사슬망을 바꾸기도 하고 디지털 트윈이나 메타버스 등으로 도시경제 환경을 완전히 변모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스마트한 기술과 인프라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문명과 자본의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 경쟁하여 왔으며, 기술혁신은 이러한 확장을 돕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보라, 세계는 살만해졌는가?
과학과 기술은 인류 진화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역으로 과학과 기술의 반성 지점도 거기에 있다. 정복과 경쟁 중심의 기술개발이 남긴 상처가 너무 크다. '교육을 위한 학교 시스템이 오히려 인격적인 교육을 방해하고, 시민을 위해 만든 도시가 오히려 시민 삶을 더 경쟁적이고 소외를 만드는'상황이 빈번해졌다. 자동차를 만들어 인간에게 이동 편의성을 제공했지만, 탄소배출 증가도 함께 가져왔다. 탄소배출은 시간 함수를 통과하면서 처음에 좋았던 편의성은 다시 기후위기를 만드는 핵심 요인으로 바뀌었고 ‘나 하나쯤 안 해도 아무 문제없을 거야’라는 공유지의 비극이 가속된다.
이미 둠스 클락(Doomsday Clock)의 초침이 재깍재깍 그 최후의 몇 초를 남기고 있다. 세계는 요동치고 있다. 지구의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으며 대규모 자연재해를 동반한 기후 위기가 계속된다. 탄소배출량은 증가하고, 코로나 같은 간염병이 출몰 시기가 빈번해졌다. 다시 탄소배출을 줄이는 전기자동차를 만들었지만, 대량의 전기를 만드는데 또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체계를 갖출 수 있다는 신화가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문제를 만들고, 다시 문제를 해결한다. 덕분에 생명을 연장하고 편의성을 얻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오늘날의 세계는 마치 피자 한판의 가운데에서 바깥으로 갉아먹는, 바깥 부분 도우만 남은 상태 같다. 과연 이러한 위기의 자기 강화 사이클을 멈출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대전환은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자기 완결적인 책임성과 도시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스마트시민의 품격을 요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