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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글 사이를 헤엄치며

by 김희동

마흔이 넘어 시작한 수영과 쉰이 넘어 시작하는 글쓰기는 어쩐지 많이 닮아 있다. 수영은 몸을 단련하며 물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고, 글쓰기는 마음을 단련하며 내면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둘 다 단순히 기술이나 취미로만 그치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꾸고 균형을 잡아주는 힘을 갖는다.


처음 수영을 배울 때의 두려움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속에서 몸을 맡기는 순간, 공포가 몰려온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하얀 종이나 빈 화면 앞에 앉아 있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그러나 자전거를 타듯, 한 번 균형을 잡는 법을 익히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몸이 물 위에서 떠오르는 법을 배우듯, 글도 흐름을 타기 시작한다.


수영은 건강을 지켜준다. 규칙적인 호흡과 전신의 움직임은 체력을 강화하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글쓰기는 정서를 지켜준다. 마음속에 쌓여 있던 생각을 글로 풀어내면, 그것은 곧 스스로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된다. 수영이 몸의 근육을 단단하게 만든다면, 글쓰기는 마음의 근육을 키운다.


하지만 두 길 모두 쉽게 얻을 수는 없다. 수영을 배우지 않고 혼자 들어갔다가는 위험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서와 배움 없이 무작정 쓰다 보면, 잘못된 습관에 갇혀 발전하지 못한다. 다행히도 세상에는 수영 강습이 있듯 글쓰기 강의도 넘쳐난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배우고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다. 잘못 든 호흡은 물속에서 곧 한계를 드러내듯, 잘못 든 글쓰기 습관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래서 시작은 더욱 중요하다.


수영과 글쓰기는 모두 경계를 넘나드는 훈련이다. 수영은 물과 공기의 경계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한다. 순간의 호흡과 균형이 깨지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 생각과 표현의 경계를 오가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단순히 단어를 엮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세계와 바깥의 세계를 잇는 다리를 놓는 일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수영은 결국 삶의 은유다. 물에 몸을 맡기되, 흐름을 제어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글쓰기 또한 인생의 은유다. 생각을 맡기되, 그것을 다듬어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둘 다 방향을 잃으면 쉽게 가라앉지만, 호흡을 고르고 리듬을 찾으면 의외로 멀리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수영장에서 균형을 배웠다. 힘을 빼야 물에 뜰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또 다른 균형을 배우고 있다. 생각이 넘칠 때는 차분히 정리하고, 막힐 때는 잠시 멈추는 법을. 이 두 가지는 결국 같은 가르침을 전한다. 삶은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맞추어 나아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수영을 시작하며 내 몸은 이전보다 건강해졌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내 마음은 이전보다 단단해졌다. 몸과 마음의 균형은 그렇게 조금씩 자리 잡아간다. 수영이 내게 물 위의 자유를 주었다면, 글쓰기는 내게 생각의 자유를 준 셈이다.


마흔 이후의 수영, 쉰 이후의 글쓰기는 늦은 출발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늦게 시작했기에 오히려 더 절실하고, 더 깊이 다가온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일은 단순히 취미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수영과 글쓰기는 그렇게 나를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속에서 배운 호흡은 글을 쓸 때의 호흡으로 이어지고, 글 속에서 다진 생각은 물 위에서의 균형으로 이어진다. 결국 둘은 다르지 않다. 수영이 내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듯, 글쓰기는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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