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걱정 없는데, 아-무것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세바시 강연을 틀어놓고 멕시코 뉴스를 훑는다. 아홉시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그전에 시작하면 마음 편하게 무언가를 더 볼 수 있어서 정각보다 한두 시간 이르게 노트북을 가져온다.
사실 저번 주는 에릭이랑 같이 자동차 극장에 가려고 했지만, 하루 전에 그의 사무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2주 격리에 들어갔다. 무언가를 할 때면 항상 코로나 때문에 멈칫거렸는데, 막상 2주의 시간이 주어지니 덜컥 용기가 샘솟았다. 그러면 여행을 다녀와도 되겠다.
그날 아침 세바시 강연은 코로나에 관한 것이었다.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이 나에겐 ‘격차’를 설명하는 한 해가 될 것이란 얘기를 듣고 새삼 놀랐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면 그래, 2020년 솔직히 전 세계적으로 리셋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하며 웃어넘겼는데, 강연자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시간이 지났는데 어떻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5년이 앞당겨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혼란스러운거라고.
벌써 10월이 코앞인데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내 자신이 뚜렷이 보였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그럼 앞으로 무얼 해야 될까. 그 생각이 머리를 맴돌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는 데까지 미쳤다. 여행을 가야겠다. 여행을 가서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 예전엔 참 좋아했지만 코로나로 미뤄두고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오전 바로 푸에블라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와하까 가는 비행기 표는 비싸고 그 때 알아보던 버스회사에서는 와하까로 가는 차편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푸에블라로 끊었다. 1박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아침 일찍 갔다가 당일 저녁에 돌아오기로 했다. 그러면 작은 가방 하나만 메고도 신나게 다녀올 수 있다.
아침 여섯시 15분에 출발해 오후 여섯시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눈 뜨자마자 이것저것 알 수 없는 희열감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멕시코 와서 처음이라 잘 차려입고 가고 싶었다. 여름 원피스를 꺼내입고 가디건을 걸쳤다. 마스크는 2개를 겹쳐 사용했다. 천마스크 위에 아껴 사용하던 한국산 마스크를 꺼냈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안경도 썼다.
그리고 우버를 불렀다.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매고 있는데 우버가 집 앞에 도착했는지 번쩍번쩍 전조등이 보였다. 멕시코시티 북부터미널 가는 것을 확인하곤 그가 어디에 가냐 물었다. 푸에블라 가요.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잘 살기 위해서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 일이 정작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길래요 하고 멋쩍게 웃었다.
그는 스페인어를 잘하네요. 하고 말을 이었고 나는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답했다. 멕시코 좋아요? 네 좋아요. 그래서 잘 살아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멕시코시티는 물가도 참 저렴하죠. 저는 캐나다 있을 때 너무 비싸서 놀랐어요. 캐나다는 무슨 일로 가셨어요? 캐나다에서 반년간 공부했어요. 사실은 HSBC 은행에서 일했었어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정리해고당했어요. 아 그렇구나. 진짜 빌어먹을 코로나네요. 당신에게 행운이 있길 바랄게요. 지금 시간이 이른데 몇 시에 나온 거예요? 어제 아침 6시에요. 그런데 당시 시간이 5시 30분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일한 건가요? 네네. 그렇게 됐네요.
그러고도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그가 무슨 버스회사냐고 물었고 나는 ADO라고 답했다. ADO 앞까지 간 그가 좋은 여행하라며 인사를 건넸다. 얼굴이 앳되어 보였다.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28살이란다. 엇 나 한국 나이로는 28살인데. 반가운 마음에 우와 나도! 했다가 아 올해 27살이 된다고 정정했다. 그가 웃으며 다시 인사를 건넸고 나도 행운을 빈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코로나 시대에 나만 집에서 꽁꽁 숨어 있었던 건지 터미널은 북적북적했다. 다들 큰 가방 하나씩 들고 있었다. .아직 동트기 전이라 어둑한 풍경 가운데서도 신선한 공기가 코 끝을 스친다. 그래도 숨은 크게 들이쉬지 않는다. 코로나는 무서우니까.
버스 표를 PDF로 저장해갔지만 그래도 뭔가 무서워서 다시 물어보려 줄을 섰다. 인터넷으로 샀는데 이렇게 화면을 보여주면 될까요? 문제없단다. 다시 버스 타는 공간까지 이동했다. 내 앞에 있던 아저씨는 휴대폰을 배 쪽으로 당겨 버스가 크게 나오도록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따라 버스를 찍었다. 푸에블라로 가는 버스다. 탑승 전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올라타 소독약을 뿌리는 과정을 거쳤다. 버스 전체가 흰색 연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한 3분 지났나. 탑승권을 확인한 후 한 명씩 탑승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 기사석에 가족사진이 눈에 띈다. 멕시코에서 유독 잘 느껴지는 사랑. 버스기사는 차량 앞에서 안면 보호대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사진에서는 그의 아내와 아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차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고 가디건을 이불 삼아 잤다. 얼마나 곤하게 잤는지 하마터면 못 내릴 뻔했다. 이른 아침의 푸에블라는 꽤 추웠다. 몸을 조금 웅크린 채 우버를 탈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서다가 택시 세구로(Taxi Seguro)를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옮겼다.
멕시코에 막 도착했을 때 오수는 내게 핑크택시는 절대 절대 타면 안 되고 꼭 우버만 타라고 했지만, 왠지 푸에블라에서는 시내 택시를 사용해도 될 것 같았다. 터미널 중간에 있는 곳에 센트로 가는 비용인 80페소를 먼저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밖으로 나가 영수증을 제출하면 택시를 지정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택시 기사님은 조금 나이가 있는 세뇨르였다. 센트로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묻길래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하고 되물었다.
사실 그 전날 저녁을 거하게 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여행이니까, 기분을 내고 싶었다. 기사님은 지금 이 시간에 문 연 곳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더니 한 군데가 있다며 그 곳으로 데려가 주겠다고 말했다. 그 츄로스 가게였다. 아침 아홉시에 맛보는 츄로스. 근데 바삭하고 맛있었다.
츄로스 한 개와 부뉴엘로를 먹고 길을 나섰다. 아직 쌀쌀했지만 걸을만했다. 챙겨온 책 한 권을 꺼내 공원 벤치에 앉았다.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기 시작했고 옆자리 노부부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마침 가져온 책은 심리학 책. 속을 끙끙 앓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구나. 다정한 그 책을 읽다 에릭이랑 마이떼한테 잘 도착했다며 문자를 보냈다.
열심히 찾아본 장소들을 찾아갔지만 이른 시간 탓에 문 연 곳이 별로 없었다. 음 그렇다면. 근교 여행을 다녀오라던 에릭의 말이 생각나 우버를 불렀다. 여성 운전자였다. 멕시코 와서 처음 본 여성 우버 운전자였다. 촐룰라에 도착했는데 피라미드 위에 세워졌다는 성당은 코로나로 문을 닫은 상태였다. 안내소에 가 이것저것 물어보다 교회를 둘러싼 경로는 열려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혼자 신나 기념품을 구경하며 걷다 길이 헷갈렸다. 근처에 있던 사람에게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보았다. 아까 안내소에서 내 뒤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걸 물어보곤 다시 저 멀리 떨어져 걷는 사람을 불러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하니 웃기긴 하다. 누가 봐도 외국인인 사람이 멕시코 사람을 불러 세워 어디서 왔냐고 묻다니. 에드가르는 21살, 께레따로 사람이었다. 께레따로에서 태어나서 대학도 떽데몬테레이 께레타로 캠퍼스를 다녔고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놓고 있었다. 푸에블라에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해서 온 지 3주 됐단다. 촐룰라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말해서 주말에 잠깐 놀러 왔고 길이 막혀 있어 나처럼 이렇게 근처를 걷고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길에 있던 박물관도 들어갔다. 코로나로 최대 4명의 인원이 15분에 한 번씩 입장 가능했다. 박물관은 볕이 잘 들었고 하얀 건물색과 어우러져 분위기가 영화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게 그렇게 평온했다. 그때 에드가르는 내게 어디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한국. 그럼 남한, 북한? 진심이야? 하고 깔깔 웃었다. 에드가르는 큰 눈으로 빤히 나를 쳐다봤다. 응. 이게 이상한 질문이야? 당연하지. 북한 사람은 자기 나라를 벗어나기 쉽지 않아. 그런데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북한 사람이 있었어. 같이 수업도 들었어. 정신이 확 들었다. 맞아. 그런 일말의 가능성도 있을 텐데. 마침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북한 대사가 멕시코 대통령에 신임장을 전달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어찌 됐든 북한 사람도 실제 전 세계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시선을 좁힌 탓에 벌어진 일이다.
바로 사과를 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표를 사는데 학생할인이 있다고 하자 에드가르가 학생증을 꺼냈다. 나는 졸업도 하고 사회생활도 톡톡히 겪어냈으니 미련 없이 제값을 주고 들어갔다. 박물관 안에서 안내를 해주시는 분들도 참 조용했다. 시선이 처음 머무른 곳은 멕시코를 상징하는 독수리 그림의 변천사였다. 멕시코 국기에 들어가는 색깔도 그렇고, 독립기념일에 여러 상징적인 단어와 함께 비바 멕시코를 외치는 것, 이렇게 독수리가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인 것도 참 멋있다.
스페인 침략을 혹독히 치러낸 푸에블라의 역사가 묻어있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그림과 설명이 잘 이해 가지 않아 에드가르를 붙잡고 여러 번 물었다. 이건 무슨 의미야? 무슨 상황이야? 그럼 에드가르가 그 글을 읽고 다시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본인도 몇 번 막히는지 아유 어렵다.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박물관 안에서도 계속 덥다며 여러 번 옷을 잡아당겨 손부채를 하길래 앞서 가기로 했던 멀리 보이는 교회는 가지 않기로 했다. 길에는 자연과 어우러져 향을 피워놓고 요가를 하는 사람, 토론을 하는 사람 등이 있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못 보던 광경인데. 그게 참 좋아서 여긴 정말 여유롭다. 하니까 에드가르도 그게 좋아서 여기에 머문다고 하였다. 자긴 사람 많은 곳이 싫다고. 그래? 나는 사람 많은 게 좋아서 수도가 정말 좋아. 할 수 있는 게 많아. 매일 새로워.
그렇게 센트로까지 쭉 걷다가 무언가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 마시자. 아니 맥주가 딱이야. 근데 너 차 가지고 왔다며. 응 근데 한 병은 괜찮아. 아니. 나는 맥주 마실게 너는 탄산수 어때 라는 말도 안되는 대화를 나누다 까사 알레마니아를 발견해 들어갔다. 옥상 테라스에 앉아 맥주와 탄산수를 시켜 번갈아 마셨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왜 여행을 왔는지,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지.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지내는지.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 등을 차례로 묻고 답했다. 그러다 너는 요새 고민이 뭐야. 했더니 자긴 하나도 없단다. 순간 그 앳된 얼굴과 대답이 너무 잘 어울려 나도 무언의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맞아. 지금 이 시대에 직업을 가지고 있는 건 참 기적같고 좋은 일이지. 그래 나도 어쨌든 멕시코에서 잘 살려면 일을 해야 되는데 기왕 하는 거 잘 하고 너무 불평하지 말자.
머릿속이 맑아졌다. 맥주 한 병에 기분이 좋아져 다음 계획을 세웠다. 나는 푸에블라 왔으니까 세미따 먹으러 갈 거야. 너도 갈래? 너는 먹어봤어? 아니. 나도 일하느라 관광은 못해봤어.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에드가르 차를 타고 다시 푸에블라 센트로로 이동해 세미따를 먹고 탈라베라 기념품을 샀다. 생각보다 배가 많이 불러 다 먹지는 못했다. 센트로에 왔으니 성당을 보자고 하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들어갔다. 휴대폰 배터리가 바닥이라 꺼질랑 말랑하자 에드가르는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었다. 너무너무 고맙다고 말하자 아이 뭐 그런 말을 다하냐며 손사래를 친다.
생각보다 재밌는 여행이었다. 혼자 여기저기 다니려고 왔지만 결국 누군가를 만나 좋은 경험을 했다. 여행 중간 길을 묻는 와중에 에드가르가 넘어진 세뇨라를 일으키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이 참 자연스러웠다.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든 흔적이 남아있겠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멕시코시티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