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산 등산

by 하이에나김

꽃무릇

지나갈 테면 빨리 지나가라 했지요 한참이

지난 뒤에도 그 자리에서 꿈쩍 않네요

머무를 테면 머물러 봐라 했지요 마음은

지천으로 흘러흘러 붉게 물들이대요

내가 그대에게 갈 수 없고

그대가 나에게 갈 수 없어도

꽃은 피었습니다

천지에 그대라 눈에 밟힙니다

- 이잠 -



구속


“내 친구는 대학 나와서 대기업 취직했는데, 결혼할 생각이 없대.”

“그래?”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데, 애는 갖고 싶대.”

“왜?”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꽃무릇이 한창인 9월 중순 불갑산 산행 때의 일이었다. 조용한 산속에서 나지막이 들리는 그들의 대화의 결론이 궁금해졌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뒤로 멀어지는 마지막 대답에 귀를 쫑긋했다.

“구속받기 싫다는 거야.”

주차장에서 절까지 마치 산에 불을 지른 듯 꽃무릇이 피어있는 불갑산은 9월 말이 되면 절정을 이룬다. 관광객이 몰려들고 등산복 색과 어울려 산은 더욱 붉어진다.

불갑사 뒤편 저수지를 지나 연실봉으로 올라갔다. 산속으로 이어진 길에는 꽃무릇이 마중하듯 양옆으로 피어있었다. 산 위로 오를수록 없어질 줄 알았던 꽃무릇은 예상을 깨고 산을 온통 점령해 버렸다. 물속, 산비탈, 바위틈, 계곡, 정상,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어있었다.

꽃무릇은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달라 서로 만나지 못한다하여 ‘상사화’라 불린다. 사랑은 하고 싶은데 결혼은 하기 싫은, 어쩌면 서로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는 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불갑산은 호랑이가 살았다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인이 불갑산에서 호랑이를 잡아 박제하였다가 다시 우리나라에 기증했다고 한다. 계곡 옆 호랑이 석상을 보니, 빨간 꽃을 헤집고 돌아다녔을 그 위엄이 느껴지는 듯했다. 지금은 호랑이 대신 염소들이 산비탈을 따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한줄기 여린 꽃무릇을 건들지 않고 사이를 헤치며 다니는 게 신기했다.

꽃무릇은 산짐승만은 견디는 것은 아니었다. 바위틈에서도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바위틈은 꽃무릇만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나무들도 뿌리를 내리고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서로 엉겨 붙은 바위와 꽃과 나무, 그들은 서로를 강렬히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서로를 구속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랑과 구속, 굳건하기도 하면서 위태로워 보이는 게 우리네 사랑과도 같았다.

연실봉에 올랐다. 푸른 하늘에 수줍게 걸린 구름, 그 아래에는 영광과 무안의 산세가 펼쳐졌다. 516m밖에 안 되는 산이지만 호랑이의 전설, 꽃과 바위의 사랑이 깊은 신비스러운 산의 모습이었다.

정상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은 더욱 가파르고 바위도 많아 험한 산길이었다. 다시 저수지쯤에서 만나 불갑사로 돌아왔다. 오후가 되니 인파는 더 늘어나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코로나19 간이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있었다. 결과가 바로 나온다길래 시험 삼아 테스트를 했다. 간호사는 익숙한 듯이 내 뒷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는 다른 한 손으로 기다란 면봉을 콧속으로 쑥 들이밀었다. 면봉이 깊숙이 들어가는 느낌이 확 들었다. 콧속이 물컹한 게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잠시 후 'C' 표시에 선이 그어지자 ‘음성’이라 했다. 다행히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를 구속하지는 않았구나 안심했다. 2년째 인류를 구속하는 코로나바이러스, 생물에 숙주하며 살아야 하는 그들의 운명, 그들은 사랑이라 말하겠지만 인류는 결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구속하지 말기를.’

꽃무릇이 한창인 불갑산에서 코로나19와 내 몸이 하나 되는 일이 없기를 빌어본다.


¶ 영광 불갑산

◦ 주소

-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함평군 해보면

◦ 입장료

- 무료

◦ 등산코스 : 연실봉까지 3.5km

- 주차장 → 불갑사 → 저수지 → 한국호랑이폭포 → 동백골 → 구수재 → 연실봉(정상) → 노루목 → 동백골 → 불갑사 → 저수지

◦ 개요

- 불갑사 뒷편 저수지를 따라 올라가면 높이 516m 연실봉이 나온다. 불갑산의 원래 이름은 아늑한 산의 형상이 어머니와 같아서 모악산이라 불렸다. 동백골, 구수재, 연실봉, 해불암, 노루목을 도는 코스로 3.5km 3∼4시간 걸리는 산행이다. 등산로 따라 꽃무릇이 불타듯 피어있으며, 바위들이 많아 높지는 않지만 그리 쉽지 않은 산이다. 불갑산에서 잡혔다는 호랑이가 유명해 불갑산호랑이 폭포도 있다. 꽃무릇이 절정을 이루는 9월 중하순, 초가을 정취를 느끼며 가벼운 산행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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