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잎으로 비밀을 감추고
고개 내밀어 까르르 웃다가도
만지고 싶어 손 뻗으면
아련하게 멀어지는
바람불면
작은 노래 흥얼거리는
꽃, 하얀 꽃
진흙 속에 피는 꽃
- 이경순, ‘꽃, 연꽃’ -
진흙속에서
우리는 여론의 눈치를 본다.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이 다수의 의견과 동일하면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만 소수의 의견일 때는 침묵한다.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독일의 정치학자 노엘레 노이만이 제시한 ‘침묵의 나선이론’이다.
노엘레 노이만은 실험으로 이 가설을 증명했다. 누군가가 화난 얼굴로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 반대하는 영상을 보여주며 의견을 들었다. 실험자들중 흡연자들은 흡연권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자신의 의견이 남들에게 비난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침묵의 나선이론은 공공의 문제, 윤리의 문제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여론의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소수의 의견이 나쁜 평가를 받고 고립되는 것을 경험하면 다음부터는 자신의 의견을 숨기고 침묵해 버린다.
사람은 자신의 관점이 다수의 관점과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대중매체나 여론조사 등을 통해 다수의 의견과 다를 경우 자신의 의견을 방향전환한다. 선거일에 임박해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일상에서 침묵의 나선이론은 자주 발생한다.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동료, 지위가 높은 상사,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의견과 분명히 다른데도 맞다고 동조해 버린다.
침묵당한 생각은 결국 발산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온다. 종교적 권위에 눌려 지구는 평평하다고 말하고는 뒤돌아서서 지구는 둥글다고 말한 콜럼부스와 같다. 결국 친구, 부하, 가족에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했을 때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소통의 정석이라 배웠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적용이 어렵다. 주류와 다른 의견은 묵살과 면박을 당한다. 창피와 두려움에 다음부터는 자신의 의견을 감추고 거짓으로 동조한다.
정치에서 여론은 매우 중요하다. 여론이 국민을 움직이고 선택과 판단의 지표가 된다. 코로나19나 백신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어겼다가는 주류에 끼지 못하고 질타를 받는다.
한여름 더위 속에 법정스님은 왕복 이천리길의 회산백련지를 찾았다. 정든 사람을 만나는 두근거림으로 연꽃을 만났다고 그는 말했다. 진흙속에서도 고결함을 잃지 않는 하얀 연꽃에서 한결같이 자기 뜻을 말하는 오랜 친구나 부처님을 생각했을터.
남들의 시선과 주위 환경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치는 삶을 살고 싶다. 다수의 의견이 사회를 이끄는 힘일 수도 있지만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어야 한다. 세월이 지나 소수의 의견이 맞는 경우도 있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하얀 연꽃 사이를 걸으며 내 작은 의견을 발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