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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Jun 10. 2020

콧구멍이 두개니까 숨을 쉬지

내가 하려다 참은 말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밉상인가보다. 


내어머니의 남편이 밉상이었고, 내 시어머니의 남편인 시아버지도 역시 밉상이다. 이제는 내 남편도 나에겐 밉상이 되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남편들은 

할 줄 아는 건 한 개도 없고,

배는 늘 고프고, 

뭔가 맛있는게 먹고 싶고

돈은 무지하게 인색해 지면서,

말은 좁쌀 영감처럼 많아지고

친구도 안 만나고 늘 집에 있으면서 마누라 한테는 나가지 말라고 하고,

고집은 세지면서 말귀는 못 알아 듣고

자식말은 죽어도 안 들으면서 경로당 노인네들 말은 믿고

세상 물정은 모르면서 엄청나게 아는 척 하기 때문에 밉상인거다.


그런 밉상인 시아버지가 경로당이라도 가실라 치면 그 뒤통수에 대고 시어머니가 늘 하시 는 말씀이 있다.


"콧구멍이 두 개니까 숨을 쉬지"

50 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그렇게 후련한 말은 들어 본적이 없었다. 

만혼의 나이에 결혼 전까지만 해도 살아가면서 말을 참거나 하고 싶지만 눈치를 보느라고 말을 못한적이 거의 없이 내마음껏 내 생각대로 말들을 뱉고 살았었다. 그러나 "시" 자는 시인가 보다. 시댁식구들 앞에서는 줄곧 내가 하고 싶은말을 다하지는 못하고 살고있다. 걸쭉한 안동사투리를 쓰시는 시어머니도 남편 앞에서는 못 한말 들이 많으신 모양이다.


대구 시댁을 일년 명절 두 번 말고는 가끔 시누이와 함께 내 려간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생신 때문에, 

또는 너무 오랫동안 안가봐서, 또는 아무 이유없이 내려가서 1박을 하고 올라온다. 

내려가기 전, 며느리인 나는 어느날은 갈비찜, 어느날은 LA 갈비 또는 장어구이 또는 한우등심이나 로스구이 등을 준비하고, 차에서 시누이랑 같이 아침으로 먹을 샌드위치, 차, 과일을 싸고,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카스테라를 제과점에서 사오고, 백화점에서 시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찝찔이 과자를 바리 바리 사온다. 그리곤 시누이에게 전화를 해서,


“형님 제가 다 준비 했으니까 그냥 빈손으로 오세요, 경기도까지 버스타고 오시려면 무겁고 힘들어요."

서울이 집인 시누이는 경기도 우리집 앞까지 버스를 타고와서 나와 남편과 같이 차로 출발을 하기 때문에 난 늘 이런말을 한다. 그럼 시누이는 정말 빈손으로 온다. 아주 작은 가방에 화장품 파우치와 혼자 마실 작은 물 한병을 가져온다.


대구집에 도착하면 시어머니께서는 아들, 딸 , 며느리가 왔다고 버선발로 반가워 하시지만 연세가 많으신 시어머니에게 특별한 반찬이 준비된 밥상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에 늘 내가 준비해 간 음식으로 그날 저녁 가족식사를 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시어머니께서는 시누이와 내가 싸가지고 갈 것들을 챙겨 주신다. 직접 담그신 고추장, 된장, 시장에서 산 야채들, 장날 사가지고 오신 흠과 한 박스, 썩기 직전의 싸게 파는 사과들, 곯아 터지기 직전인 싸게 사신 단감 한박스, 우리 올 때를 대비해서 사다 얼려 놓은 생선들, 기타 등등 열심히 모아 놓은 것들을 신문지에 바리바리 싸주신다 . 


트렁크 한가득 차가 묵직할 정도로 싸가지고 오지만 이미 그때 쯤 되면 내입은 근질근질하고 콧구멍 두개로 숨만 쉬고 씩씩대고 있다. 


이러다가 아무래도 조만간 숨쉬기를 포기하고 난 이말들을 내뱉을지도 모르겠다.


"형님, 정말 빈손으로 오지 마시고 어머니 좋아하는 파리바게뜨 카스테라라도 하나 사가지고 오세요.“


"어머니, 제발 흠과나 썩기 직전 과일들 싸다고 사서 쟁겨 놨다가 드시지 마시고, 옳게 생기고 싱싱한 사과 몇 알 만 사서 맛나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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