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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서리 Nov 28. 2022

4인 가족 이야기

양손 가득 켜켜이 박스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잔뜩 들고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세상에! 뭘 그리 사 가지고 왔어?” 

“언니 생일을 못 챙겨줬잖아. 지금 딱 오도리 먹을 때거든. 가락 시장 들러서 팔팔 뛰는 놈들 몇 개 실어 왔어.”


몇 개 뛰는 놈들이라고 하기에는 스티로폼 상자가 너무 컸고, 뚜껑을 연 그것 안에는 오도리 새우가 펄떡펄떡 뛰어올랐다. 그녀는 10월 중순이었던 내 생일에 얼굴도 못 보고 지나갔다면서 몇 킬로그램인지 알 수도 없는 오도리 상자, 각종 과자 박스, 소주 5병과 맥주 2박스로 대학생 MT 가서 먹을 수준으로 사 들고 왔다. 




그녀는 나와 26년 지기 친한 동생이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더 반갑다. 그녀는 나를 만나면 자신의 4인 가족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컴퓨터 게임에서 리더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게임의 왕좌를 차지한 이야기, 교내에서 아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인기 절정이며, 다들 친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라서 하물며 너무 친하고 싶은 나머지 일부러 왕따 시켜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친구들 이야기, 담탱이가 이상한 선생이 걸려서 자기 아들이 학급 회장인데도 불구하고, 꾸짖고 나무라고,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남편과 함께 학교를 찾아가야 할까 말까 라는 이야기, 대학생이 된 첫째 딸에게 둘째 이야기를 함께 상담했다는 이야기, 아들이 속상해서 펑펑 울면, 자기도 펑펑 울다가 겨우 마음 추스르고 나를 만나러 나왔다는 이야기 등 친한 내 동생, 그녀는 정말 감성적이고 이야깃거리가 훌륭하다. 이런 이야기를 속 시원히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곤 난 또 조용히 그녀의 장단을 맞춘다. 




그런 그녀가 양손 가득 보따리를 싸 들고 집으로 들어와서 시작했다. 그녀의 4인 가족 이야기!


갑작스러운 그녀의 방문에 쓰던 보고서도 멈추고, 데스크 탑에 열어놓았던 십여 개의 프로그램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녀에게 해줄 가족 이야기가 없다. 왠지 2인 가족은 완성품이 아닌 듯한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부부로 만나서 아이가 생겨 3인이 되면서부터 ‘가족’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게다가 4인 가족이 되면 완벽한 완성체라는 자부심이 가족 구성원에게는 당연히 주어지는 사명감인 듯하다. 오후 운동 코스로 율동 공원 한 바퀴를 돌다 보면 텐트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주변이 떠들썩하게 음식을 먹고 먹여주며 배드민턴이나 캐치볼을 하는 팀은 모두 4인 가족이다. 마치 다람쥐 가족처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성벽이 있는 것처럼, 4인 가족의 아우라는 감히 넘볼 수 없는 폐쇄적 보수성이 넘실댄다. 나는 그러한 나의 편파적인 생각을 ‘4인 가족 증후군’이라 부르기로 했다. 


어느 날 차 타고 가다가 신랑이 울컥 화를 낸다.


“마, 아예 가족 증명서랑 등기부등본을 붙이고 다니라!!”


때깔 좋은 벤츠 SUV 앞차 뒷유리엔, 

‘아이가 타고 있어요. 사고가 나면 아이들 먼저 구해주세요. 첫째 남아 B+, 둘째 여아 A+입니다. 천천히 운전해서 죄송합니다. 아이가 있어서 그래요.’


“마, 사고나믄 그라믄 어른은 냅뚜구 아이만 구출하나? 애한테 수혈하게 되믄 아 피검사도 안 해보고 뒷 유리창에 써있는 혈액형 보고 그냥 막 수혈하나?” 


이 남자도 어지간히 ‘4인 가족 증후군’이 있겠구나 싶다. 


2인이면 어떠하고 4인이면 어떠하랴. 2인이 불행하고 4인이 행복할 거라는 나의 편협심도 4인 가족을 만들 수 없는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결혼 8년 차, 이젠 괜찮다. 

그는 나를 딸로 여기고

나는 그를 아들로서 키우고 있으니, 

우리는 2인이자 4인 가족이니


...그러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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