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김치찌개 어때?

김치찌개 만들 때 생각나는 사람

by 오서리

가끔 이 질문을 신랑한테 하면, 그는 잠시 멈칫하며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나, 오늘은 마님 기분이 별로이신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하고.


돼지고기를 덤성덤성 썰고, 푹 익은 작년 김장 김치를 풍덩풍덩 잘라 한 냄비 끓여내는 동안, 냉동실에 잠자고 있는 조기 한 마리를 꺼내 프라이팬에 굽기 시작한다. 쿠킹 포일을 큼직하게 잘라서 조리대에 깔고, 들기름과 솔, 맛소금, 그리고 김 여섯 장을 준비한다. 김 한 장을 쿠킹포일 위에 얹고, 솔에 들기름을 묻혀 김의 구석구석 기름칠을 하고, 맛소금 통을 머리 위까지 올려서 김 위를 스치듯 뿌린다. 그렇게 여섯 장의 김들을 들기름과 소금에 재운 다음 두 장씩 손잡이 있는 구이 망에 끼우고 가스 불을 촤르르 올려서 김의 앞 뒷면을 휙휙 지나가며 바싹 구워낸다. 가위로 구운 김 여섯 장을 한꺼번에 쥐고 자르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들기름이 구워진 냄새는 어쩌면 그것이 힐링 자체라 할 수 있겠다. 반의 반의 반을 자르면 김구이는 한 번에 먹기 좋은 크기가 되고 그걸 뚜껑이 꽉 닫히는 플라스틱 통에 넣고 뚜껑을 탁 닫으면 김치찌개와 조기 구이는 기가 막히게 시간을 맞춰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이렇게 김치찌개 세트 메뉴를 준비하는 3-40분 동안 나는 늘 온전히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가 그랬다.


김치찌개, 생선구이, 김구이는 우리 엄마의 세트 메뉴였다. 대부분은 고등어가 밥상에 올라왔지만, 구정이나 추석 같은 날들이 다가오면 고등어는 굴비로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굴비가 달갑지 않았다. 큼지막한 고등어는 두 마리를 구워서 우리 다섯 식구가 먹었지만, 손바닥만 한 굴비는 한 마리만 구워지고, 그나마 아버지 밥상 가까운 데로 옮겨졌다.


“김은 짝수로 재워야 된다. 그리고 반드시 두 장씩 앞뒤로 쓱쓱 빠르게 구워 줘야 돼. 한 장씩 구우면 너무 타버리고, 세 장을 한꺼번에 구우면 가운데 김이 안 구워지거든. 그러니 두 장씩 구우면 딱 맛있게 구워지니 짝수로 재우는 게 맞고, 김에 가끔 불이 붙으면 입으로 훅 불어서 얼른 꺼야 돼.”


엄마의 말들이, 아직 싱크대에 키가 닿지도 않는 어린 나와의 대화였는지, 아니면 엄마의 혼잣말이었는지 나는 다 크고 나서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과연 누가 집에서 김을 재워서 구워 먹겠는가. 마트에 가면 동원 양반김, 지도표 성경김, 이마트 노브랜드 김까지 널리고 널린 게 조미김인데. 근데 그때도 조미김은 있었다. 그러나 엄마는 늘 김을 직접 구워 식구들 밥상에 올렸고, 그것이 엄마가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정성 한가득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배운 나도 2020년인 지금 김을 직접 구워 먹는다.


자세히는 느끼지 못했지만, 엄마가 김치찌개 세트 메뉴를 하는 날이면, 엄마는 별로 말씀이 없었다. 조용하지만 고요하고, 슬프지는 않지만 고독함이 가득한, 엄마의 부엌에서의 뒷모습을 난 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분명, 그냥 삶이 힘들고, 현실도 힘들고, 아이 셋도 힘들고, 얼큰하게 취하신 아빠의 늦은 귀가도 힘들고, 생활비는 쪼들리고, 시어머니의 귓가에 맴도는 땍땍거림도 힘들고, 모든 게 귀찮고 그랬을 거다.

그렇지만, 아이 셋은 엄마를 향해 눈빛을 보내고 있고, 뭔가 해줄 맛있는 건 없고, 그렇다고 인스턴트 라면은 먹이고 싶지는 않고, 이것저것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고는 싶지만, 살림은 넉넉지 않고, 엄마의 몸과 마음은 피곤한 날, 분명 그날의 메뉴가 바로 김치찌개 세트였을 거라는 정답을 난 한참 후에 결론 내렸다.


그리고 나 역시

만사가 귀찮고, 기분은 이유 없이 까라 앉고, 한마디 말하기도 싫고, 삶도 힘들고, 해먹을 건 없고,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돈은 아깝고, 신랑도 꼴 비기 싫고, 그렇다고 밥을 안 할 수도 없는, 스멀스멀 심통이 올라오는 그런 날이면 습관처럼 엄마의 김치찌개 세트 메뉴를 준비한다.

그리곤 조용히 음식 만들기에 집중한다.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신랑은 괜히 시끄럽게 김치찌개 냄비에 머리를 박고 ‘아이고 맛있다, 맛있다’는 말을 연거푸 하는 걸 보면

분명 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둘이 한껏 땀을 뻘뻘 흘리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먹고 나면,

난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낄낄대며 웃고 있다.


우리 엄마도 김치찌개 만드는 30분, 식구들이 맛있게 밥 먹는 30분 동안,

분명 가지고 있던 묵직한 무언가는 그냥 또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난 그렇게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읽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