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1월 5일이 아주버님 생신이었어, 게다가 얼마 전에 디스크 수술받으셨는데, 가봐야겠네.
1월 8일은 우리 외 조카 고등학교 졸업이구나.
같은 날 대구 시아버지 생신이시네. 아버님이 해산물 좋아하는데, 올해는 전복 튼실한 놈들 보내 드려야겠다.
2월에 우리 둘째 친 조카 대학교 졸업이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취업도 힘들다는데, 좀 줘야 하지 않을까? 근데 그놈 생일이 4월 11일이니까 한꺼번에 줄까?
작년 말부터 시누이가 계속 아프다는데, 휴! 뭘 좀 해다 줘야 하나.
3월 10일이 형부 생일이네. 이번엔 뭘 선물해야 하나?
며칠 전에 친정 언니가 담석 수술을 했는데 걱정이네.
곧 5월인데, 분당 친정이랑 대구 시댁에 뭘 쫌 해가지?
이 정도쯤 되면 내 머릿속 계산기는 지출에 필요한 숫자들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이건 대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장사다.
내 나이 마흔다섯에 오십 먹은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 후 5년 내내 안 해본 방법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임신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젠 그만 포기하기로 했다. 그냥 둘이 평생 사랑하며 살자고 결심했지만, 자꾸 밀려드는 관혼상제의 이벤트 앞에서는 자식이 없는 우리 부부에게 입금보다는 출금에 가까운 삶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나보다 몇 살 위의 가족, 친척들이 아프기 시작했고, 일찍 결혼한 가족, 친지, 친구들의 아이들은 전부 장성하여 결혼도 하고 다시 그 아이들을 낳았고, 주변에 축하하고 슬퍼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좀처럼 많아졌다. 그에 반해,
나는, 내 삶은 너무 고요하다.
그게 자꾸 억울해졌다.
좀 젊었을 때는 느닷없는 용돈이 생기면 뜻밖의 횡재한 기분으로 이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를 고민하는 즐거운 상상에 빠졌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면 돈이 아깝고, 내 주머니에 남은 돈을 다시 세어보고, 어디서 이 돈을 아껴야 하는지를 계획했었다.
그런데 좀 살다 보니, 들어오는 돈도 내 돈이 아니고, 나가는 돈 역시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돈의 운명인 것이다.
즉, 쩐은 윤회한다.
어느 날, 평생을 고질병으로 가지고 있는 목 디스크가 또 도졌다. 화장실도 못 간 채 꼼짝없이 자리에 누워있는데, 엄마가 30만 원을 주고 가신다. 병원비도 보태 쓰고, 음식 하지 말고 당분간 뭐 사 먹으라고.
며칠 후 아주버님이 허리디스크가 급성으로 터져서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서는, 시누이에게 30만 원을 건넨다. 병원비에 보태 쓰시라고.
그리곤 아주버님 병간호하던 시누이가 아프단다. 아주버님 급성 디스크 수술에 너무 놀라서 신경 쓰느라고 병이 나서 간수치가 올라가고, 머리가 다 빠졌단다. 나는 갈비찜, 홍합 미역국, 김치밥, 전복죽, 마른반찬들을 바리바리 싸서 가져다준다. 그냥 사다 주는 게 더 싸게 들 거라는 걸 알면서도 굳이 해다 준다. 그냥 마음이 그러고 싶었다.
그 후 신랑이 시누이 일을 심부름해줬는데, 고맙다고 시누이가 30만 원을 주셨다. 그 심부름이 30만 원어치의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시아버지 생신이라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완도 전복 큰 놈들을 대구로 보냈다.
어버이 날이라 대구 시댁을 갔더니, 전복도 보냈고, 이것저것 음식 해오느라 고생했다고 시어머니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오만 원짜리 여섯 장을 나에게 주신다. 30만 원이다.
대구에서 올라오는 길에, 시어머니께서 싸주신 직접 짠 참기름 5병을 친정엄마한테 내려놓으려고 들렀다. 엄마 제일 친한 친구분이 백화점에서 고급 과자 한 박스를 선물로 주셨다고 나한테 몇 개 쥐어준다. 그걸 들고 집에 와서 신랑과 함께 티타임을 하며 한껏 행복해한다.
작년부터 시작한 막걸리 담그기가 제법 손에 익어 올해도 5주일 동안 잘 발효시켜 걸러낸 일곱 병 중 한 병을 친정아버지 맛보시라고 드리고, 또 한 병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 같은 동생한테 선물했다. 친구들과 캠핑을 간다길래 밤에 불멍 하며 막걸리 마시라고.
그 동생이 나에게 브런치를 소개한다. 내 이야기를 한번 써보라고. 솔직 담담하게 써내려 갔더니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평생 머릿속에만 맴돌았던 이야기들을 작고 소소한 에세이 한 편씩을 써내는 취미가 또 하나 생겼다. 매주 써 내려가는 에세이로 이제는 그 동생과 팟빵까지 한다. 이 작은 행복감에 자꾸 웃음 난다. 내가 몰랐던 세상이었다.
이 이야기의 끝은 뭘까? 아니, 끝이나 시작은 있는 걸까?
내가 처음에 엄마한테 받은 30만 원이 내 돈이 된 건가? 아니면 시누이에게 병원비로 드린 30만 원은 내 지갑에서 나간 걸까? 누군가에게 받은 용돈은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나간 돈만큼 되돌려 받지 못하더라도 또 다른 보상으로 나를 찾아온다. 나에게 그 행운이 오다가 잠시 막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반경 3km 안의 내 주변에서 다시 기쁨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 내가 계획했던, 또는 내가 억울해했던 나의 머릿속 주판알은 이젠 더 이상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징징대지 않기로 했다.
돈이건, 마음이건, 작은 행운이건, 주고받음의 행복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