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전화 벨소리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르응!”
낯선 새벽 전화벨은 빨리 받으라는 짜증 섞인 소리로 울려댔다.
엄마는 이미 그 벨소리 너머의 충격과 슬픔을 예상한 듯한 얼굴로, 사색이 되어 단숨에 전화를 받았다.
“누나!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아산병원 가고 있으니까 빨리 와봐.”
그렇게 외할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진 지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나셨고, 이모들과 삼촌을 한자리에서 모두 본건 내 인생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렇게 열한 명의 딸들과 아들은 30년 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딸 아홉, 아들 둘을 나으셨고, 엄마는 그중 첫째 딸이다.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여덟째 이모는 미국 LA에 사시고, 일곱째 이모는 하와이에 사신다.
그리고 한국에는 첫째인 엄마와, 여섯째, 아홉째 이모와 막내 삼촌이 살고 계신다.
1960년대 말 발레리나였던 둘째 이모는 미국 남자와 결혼을 해서 미국에 살게 되었고, 그 이후, 이모들은 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한창 미국 이민을 할 시기에 한집 한집 이민을 가기 시작 헸다.
엄마 말에 의하면, 이모들이 미국 이민 가기 시작한 이후, 한 번도 형제자매가 전부 모인 적이 없다고 하셨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미국 이모들은 울며불며 한 명 한 명 입국했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장례식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명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인데,
내 눈엔 일종의, 잔치 같았다.
한 명 들어오실 때마다 먼저 도착하신 이모들은 일제히,
“어머머머, 얘! 순자야, 명자야. 이게 웬일이니!”
(그리곤 한동안 통곡하며 펑펑 우셨다)
“아이고, 불쌍한 울 아버지! 이렇게 갑자기 가시면 어쩌나!”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한참을 우시고 나면,
방에 들어가서 준비된 소복을 갖춰 입고,
잠시 화장을 고쳐 매고 나와선 상주 석에 차례대로 앉으신다.
첫째 옆에, 둘째.
셋째는 아직 도착 전이니까, 좀 띄워놓고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여덟 째는 좀 있으면 도착한다고 하니까, 한 칸 띄고.
아홉째 막내 이모는 맨 끝자리에 자리도 없어서 거의 쪼그리고 어정쩡 앉아 계셨다.
아빠를 선두로 이모부들도 마찬가지로 밖에서, 손님 상에서 정신없이 돌아다니셨지만 순서는 있었다.
소복 입은 엄마와 여덟 명의 이모들이 한 줄로 앉아 계신 모습을 보니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
한참을 울었는지, 이젠 다 울었는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여자 아홉 명이 만났으니, 그 잠재되어 있던 수다의 본성이 깨어나기 시작했나 보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딸 아홉이 다 같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남 다른지, 슬픔은 뒤로한 채 이모들을 돌아가면서 쳐다보며 흐뭇한 미소였다. 조문객이 오면 맞이하고, 묵묵히 슬퍼하고, 같이 울고, 조문객이 식사하러 나가면, 다시 또 앉아서 속닥속닥, 조곤조곤, 한쪽에선 피식피식 웃음도 새어 나오고. 그러다가 조문객이 오면 또다시 심각해지는 걸 반복했다.
발인 날 새벽,
이젠 올 사람들은 다 왔다 갔고, 가족들만 남은 조용하지만 분잡한 마지막 장례식장 새벽이었다. 외할머니를 중심으로 이모들은 사분사분 동그랗게 모여 앉았고,
누군가 한 명 울기 시작하면 아홉 명의 딸들은 통곡하며 할아버지를 기렸고,
누구 하나가 이모부 흉을 보기 시작하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자기 남편들 얘기를 서슴없이 해댔고,
또 어떤 이모가 미국에서 겪었던 에피소드 이야기를 하면 하나같이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얘, 우리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거니?”
“옛날에도 아버지 그랬잖아. 당신은 입 꾹 다물고 엄숙하면서도 딸들이 와서 수다 떠는 건 좋아하셨으니까, 이해하실 거야” (그리곤 또 까르르)
이건 대체 장례식장인지, 축제인지
이젠 이 모임의 목적과 의미는 이미 중요해지지 않았다.
"아버지 덕분에 우리 모두 모이게 되었네, 아버지 살아생전에 이렇게 모여서 수다라도 떨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모들은 한결같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짧았던 축제는 끝났고, 다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거짓말같이,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4개월 후, 외할머니 역시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다시 이모들은 축제를 위해 모였다.
그러나 할아버지 때보다 더욱 슬프고, 애처롭고, 통탄스러운 그런 축제였다.
예상치 않은 시간에 울리는 낯선 전화 벨소리란 나에겐 이미 겁쟁이가 되어 버린 어느 날,
새벽 6시,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르르응!”
“왜요? 아빠? 무슨 일 있어요?”
“아니다, 전화기 만지다가 잘못 눌렀네.”
‘휴우!’ 신랑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간혹 스마트폰 조작이 서투신 아빠가 잘못 눌러서 나에게 전화가 올 때면, 난 늘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새벽 전화 벨소리가 축제를 가장한 슬픔이 되기 전에
오늘 엄마 아버지 앞에 가서 언니랑 같이 수다나 떨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