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레시피
“이 깍두기 국물 시원~하니까 한 번만 떠먹어 봐 봐.”
‘휴~엄마!’
난 또 엄마를 한껏 째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갈비탕 국물도 아니고 육개장 국물도 아니고, 대체 왜 엄마는 깍두기를 담가 익을 때만 되면 보시기에 깍두기와 국물을 한가득 떠놓고는 자꾸 깍두기 국물을 떠먹어 보라고 하는지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됐다.
어제도 새벽 1시에 들어와서 딱 4시간 자고 5시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6시엔 나가야 하는, 월화수목금금금 죽도록 일만 하고 살고 있던 어느 날. 새벽밥을 차려주신 엄마는 내가 마지못해 꾸역꾸역 넘기고 있는 밥숟갈을 턱을 괴고 쳐다보시더니 하신 말씀이, 깍두기 국물을 떠먹어 보라는 거였다.
게다가 깍두기 국물을 아침부터 먹으면 아무리 이빨을 닦아도 마늘 냄새와 젓갈 냄새가 입 안에서 계속 남고, 자칫 신중하게 닦지 않으면 고춧가루가 이빨 사이에 끼어있을 수도 있을뿐더러, 출근해서 혹시라도 트림이라도 한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냄새를 풍긴다는 사실을 왜 엄마는 모르는 걸까.
있는 힘껏 신경질을 엄마한테 부려 놓고는 또 그것도 잊은 채 오늘도 파김치가 되어 들어왔다. 다음날 주말 아침,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있는데, 엄마는 찬밥 한 덩이에 시뻘건 깍두기 국물을 쓱쓱 비벼서 깍두기 몇 알을 엊어 아침을 드시고 계셨다. 정말 맛있게.
“엄마, 다른 거 먹을 거 많은데 대체 그건 왜 먹어?”
“울화통 터질 땐 깍두기 국물 만한 게 없지. 넌 아직 모른다. 지지배, 그거 쫌 한입 먹어주면 어디 덧나니?”
엄마는 며칠 전 아침에 깍두기 국물 먹어보라고 했던 자신의 말에, 내가 신경질을 내고 출근해버렸던 그 날의 일이 아직도 괘씸했던 가 보다. 난 깍두기 국물이 엄마의 울화통 소화제였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엄마는, 매일 일에 시달리는 막내딸을 보면서 얼마나 울화통이 터질까 걱정해서 자신의 방법대로 깍두기 국물을 한 수저 떠먹으며 자신과 같이 울화통 치유제로 권했던 것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 나이도 지천명이 되던 작년 12월 김장 날,
엄마, 언니와 함께 삼 모녀가 모여 앉아 김장김치와 함께 겨울 깍두기를 담갔다. 겨우내 한참 먹었던 김장김치와 깍두기가 끝나갈 즈음 봄김치를 담가 먹었고, 또 그 봄김치를 거의 다 먹을 무렵 갑자기 잊고 있었던 작년 겨울 깍두기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뚜껑을 열어본 깍두기는 시콤한 냄새를 풍겼고, 단 한 번도 먹어본 적도 없었는데, 깍두기 국물 비빔밥이 먹고 싶어 졌다.
새로 한 밥을 일부러 식혀서,
깍두기와 국물을 한껏 보시기에 담고,
깍두기 국물을 한 수저 크게 떠서 밥에 쓱쓱 비비고,
깍두기 몇 알을 올려서 먹으니,
과연, 속이 뻥! 뚫리는 맛이었다.
신랑한테 한입 먹어보라고 하니, 그걸 왜 먹냐는 예전의 나와 같은 반응이다.
바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깍두기 국물에 밥 비벼먹으니까 진짜 끝내 준다. 속이 다 시원~하네.”
“거봐라, 이제야 니가 그 맛을 아는구나.”
그 옛날 엄마 말대로,
다 엎어 버리고 싶은 빡치는 아침 출근길에,
깍두기 국물 한번 떠먹었다면,
난 쫌 더 쿨하게 직장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