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versus, 대비/대립의 상태)
도시에서의 시험, 연애, 취직 등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혜원 <김태리 분,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2018년작> 은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근처에 살고 있는 고모가 방문한다. 밥 먹으러 고모네 집으로 오라고 하면서도, ‘엄마나 너나 똑같다’며 디스를 하는 고모를 향해 혜원이는 자조적으로 읊조린다.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난 어떤 존재지? 고몬가? 이몬가?’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고모이면서 이모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모들도 있고, 고모도 있었다’.
내 어릴 적 기억으론 외갓집은 부자였다. 외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온화하고 인자하며 외갓집엔 늘 사람들이 북적이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1940년 종로 1가에 송옥 양장점을 외할머니가 개점하였고, 1.4 후퇴 때 줄자 하나 들고 부산으로 피란 가서 부산 광복동에서 다시 숍을 열었고 서울이 환도된 후 명동으로 돌아와 큰 성공을 거뒀다. 60년대 후반~70년 초반 패피 언니들이 입었던 보라색 벨벳 원피스는 일명 ‘재키 룩’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명성은 오래가지는 못하여 1979년 금융사고로 파산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그런 외갓집 11남매의 첫째 딸이다. 딸 아홉, 아들 둘의 11남매들의 자식들이 결혼해서 그 자식들을 낳았고, 100명이 넘는 사촌들의 그 모든 일들에 대해 맏딸인 엄마는 늘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카운슬러였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아침의 기억은, 엄마는 늘 이모들의 전화를 받았다. 웃고, 울고, 혼내고, 타이르고, 다그치고, 어르고, 나무라고, 엄마는 맏딸 이상의 역할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홉 명의 이모들은 엄마의 막내딸인 나에게 호의적이었고 난 늘 이모들의 선물을 받았다. 이모들은 나한테 ‘뚱뚱하다, 살 빼라, 공부는 하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등등의 비수의 말들을 꽂았지만 그래도 난 이모들이 좋았다. 그리고 여전히 외갓집 사촌들과는 만나고 모인다.
친할머니는 말을 예쁘게 하지 않는 욕심 많은 할머니였다. 할머니 옆집엔 한 명뿐인 고모가 사셨고, 당시 고모네 아들 4명 중 3명이 서울대를 진학했었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늘 고모네 아들들, 공부 잘한 이야기들, 서울대 이야기를 했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엄마는 가만히 그 말들을 다 듣고 계셨다. 고모는 오빠의 자식들인 나와 우리 남매들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칭찬도, 꾸중도,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고, 디스 하는 말들을 한적도 없으셨다. 나 역시 고모나 고모네 집, 친가네 사촌들에겐 관심이 없었고, 고모와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친할머니까지 돌아가신 후엔 고모네 사촌들과는 더 이상 인연을 잇지 않았고, 불편하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고모와 이모의 경계는 비단 그들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하는 방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홉 명의 이모들은 우리 아빠한테 ‘형부~~~ 우, 형부~’ 하며 살갑게 대했지만, 고모는 우리 엄마한테 ‘올케~~~, 올케~’ 하며 다가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결혼한 내 친구들을 만나도 올케에겐 불만이, 형부에겐 애틋함이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남자 형제보다는 여자 형제끼리 더 자주 만나고 수다를 떨어서? 아니면 우리네 잠재의식 속 ‘피의 나눔’에 있어서 한국식 유교적 해석 때문인가?
언니나 여동생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냥 무작정 도와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음식을 해다 주고, 혹시 말하기 불편하면 형부를 잠시 밖에 나가 있으라고 까지 하며 함께 공유하게 된다. 그런데 오빠나 남동생이 힘든 일이 생기면, 가서 도와줘야 되나? 가도 될까? 혹시 나 때문에 올케가 불편하지는 않을까? 내가 너무 오버하는 건 아닐까?라는 물음표가 먼저 들기 마련이다. 행동부터 하느냐, 생각을 먼저 하느냐가 다를 뿐이지, 분명 걱정이 앞서는 그 깊은 속내만은 같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집집마다 고모와 이모들이 즐비할 정도로 아이들을 낳지 않는 ‘온리 촤일드’ 시대가 도래했으니, 그들이 자라고 나면 그냥 미국의 uncle 또는 aunt처럼 더 단순화되고, 더 서로 애틋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모인 동시에 고모인 나는 진심의 마음 하나만 가져가면 되지 않을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고모네 집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 혜원에게 ‘체할라, 물 마시면서 천천히 먹어라’라고 했던 고모의 애틋한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