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와이리 쌔그랍노! 아래깬 괘안터니만, 이거 반툼 하실랍니까?”
대체 이 남자 뭐라는 거지? 한국어야? 욕 하는건가?
(해석 : 와아~이 레모네이드 많이 새콤하네요. 요즘은 레모네이드에 맛들려서 그저께도 카페에서 한번 시켜 먹었었는데 아주 맛있게 마셨거든요. 그런데 오늘 레모네이드는 시네요. 혹시 레모네이드 좋아하시면 이거 조금 마셔 볼래요?)
마흔다섯 늦은 나이까지 일만 하고 살고 싶진 않았었는데, 어느덧 정신 차리고 보니 그렇게 내 인생은 흘러가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에이, 여기까지만 하고 선은 그만 봐야겠다’라고 마음먹고 나간 선보는 자리에서 만난 이 남자는 옆 사람이 쳐다볼까 봐 약간은 창피한, 목소리가 아주 큰, 정신없는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내고, 그냥 말해도 싸우는 것 같은 오십 세의 맑디맑은 영혼과 제3외국어 같은 언어를 구사하는 대구 남자였다.
게다가 조상 대대로 난 뼛속까지 서울 여자다. 경상도 남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서울 여자! 부산 놀러 가서는 경상도 말투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 흔한 콘팅이나 헌팅도 한번 안 했던 서울 여자다.
‘정해인의 부드러움, 이선균의 목소리, 이병헌의 여유로움, 신동엽의 유머, 송강호의 능청스러움, 강동원의 얼굴, 공유의 몸매, 나영석의 똑똑함, 봉준호의 디테일’과 같은 남자를 만나 평생을 행복하고 오순도순 독서와 클래식 음악을 즐기며 조용하고 우아하게 살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배정남+강호동+이만기를 합쳐놓은 듯한, 제발 10분만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는 그런 시끄러운 경상도 남자와 살고 있을 줄이야.
결혼 후 처음 명절을 보내러 대구 시댁을 갔었다. 건넛방에서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데, 안방에서 시아버지와 신랑이 심하게 다투는 소리가 났다. 집이 떠나갈 듯, 아니 동네가 떠나갈 듯이 고함을 지르고, 욕도 들리고, 벽도 쿵쿵 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마침 외출에서 돌아오시는 시어머니께,
나 : “어머니, 아버지랑 오빠랑 지금 엄청 다투고 계세요.”
시어머니 : “아이다, 우짜든 둥 두리 저짜하구 인는둥”
(해석 : 싸우는 거 아니다, 어쨌든 저번에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못한 게 있는데, 그거에 대해서 대화하는 중이다.)
난 시어머니와 둘이 식사 준비를 하느라 부엌에 있을 때가 가장 두렵다. 마치 영어 한마디 못하는데, 미국인과 둘이 몇 시간을 고속버스 옆자리에 앉아가는 그런 기분이다. 그럴 때면 이젠 조금이나마 익숙해진 대구 남자 남편을 늘 불러 세워놓는다. 해석하라고! 안동분이신 시부모님은 대구 남자 남편보다 더 짧고, 더 못 알아듣겠고, 더 빠르다.
내가 tvN에서 새로 시작하는 ‘라끼남[1]’에 대해 신랑에게 설명해주었더니 정말 좋아한다. 이젠 드디어 경상도 사투리 제목의 프로그램이 방송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고. 저 근거 없는 경상도에 대한 자부심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정치인, 경제인, 예술가, 방송인, 하물며 사기꾼까지도 경상도 사람이 나오면
‘역시 갱상도 넘더리 매매하고 단디 하다. 나머진 디디 하네,’라고 한다.
(해석 : 역시 경상도 사람들이 꼼꼼하고 똑똑하고 사리분별이 좋아. 경상도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별로인 거 같아.) 이젠 네이버에 굳이 단어 뜻을 찾아보지 않아도 대충 얼렁뚱땅 때려 맞추는 실력까지 된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계산대 앞에서, 어느 곱상하신 여성분이 한 두 개 밖에 안 샀으니, 먼저 계산하겠다고 앞사람을 밀치고 나서고 있었다. 순간, 내 입에서는 “뭐꼬!!!!!!!”
(해석 : 저기요, 실례합니다 아주머니. 다들 지금 계산하려고 줄 서고 있는데 이렇게 새치기하시면 안 되죠. 소량으로 물건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줄 서야 됩니다. 뒤로 가셨으면 하는데요.)
짧고 쎄고 퉁명스러운 그 한마디에 순간 주변은 얼어붙었고, 그 여성분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며 상황은 정리되었다. 주변도 주변이지만, 가장 깜짝 놀란 건 나였다. 나는 정신이 혼미하고, 나의 존재에 대한 혼돈스러움 때문에 한동안 어지러웠다. 난 진짜 경상도 사투리가 싫은 서울 여잔데!
나는 요즘, 간혹 아니 종종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게다가 대구 남자 남편에게서 꽤 네이티브처럼 구사한다는 칭찬마저 듣는다. 남편은 나한테 뭐 부탁할 게 있으면 서울말을 쓴다. 천천히, 조용히, 말끝을 올리면 전부 서울말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렇게 대구 남자 남편과 서울 여자는 같이 산지 5년 만에 서로의 사투리를 구사하며 구수하게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1]2019년 12월 6일부터 tvN에서 나영석 피디와 강호동이 함께 진행하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6분짜리 프로그램. 경상도 출신의 강호동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한 번에 라면 6 봉지를 끼리 먹는(‘끓여 먹다’의 경상도 사투리) 모습을 본 영리한 나영석 피디가 분명 즉흥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일 거라 필자는 추측됨. 전설의 육봉 선생이라서 프로그램 편성도 6분짜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