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다고 느꼈다면 이제는 ‘의미’로 봐야할 때
“난 내가 먹고 싶을 때 항상 귤을 먹을 수 있어.
여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 먹으면 돼.
그게 다야.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
간단한 줄거리 (스포주의)
종수는 어릴 적 동네 친구였던 해미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이 곧 아프리카 여행을 떠날 예정이니 자신의 고양이인 ‘보일’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해미가 떠난 뒤, 종수는 매일 보일이의 밥을 챙겨주러 해미의 집을 방문하지만 한번도 보일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벤이라는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종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벤에게서 불안을 느낀다. 어느 날, 세 사람이 종수의 집에 모이고, 종수는 벤에게 어릴 적 어머니의 옷을 불태웠던 일을 털어놓는다. 이에 벤은 자신은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취미가 있다고 말하며, 곧 이 근처에서 하나를 태울 거라고 말한다.
얼마 후, 해미가 갑자기 사라진다. 누구도 그녀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종수는 벤을 의심하며 벤의 뒤를 쫓다가, 벤의 집에서 해미의 것으로 보이는 분홍색 손목시계를 발견하고, 벤이 어딘가에서 데려왔다는 고양이가 해미의 고양이인 ‘보일’일 거라고 확신하게 된다.
영화는 종수가 아버지의 칼로 벤을 찌르고, 그의 시신과 칼, 벤의 포르쉐,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불태우는 장면으로 끝난다. 하지만 해미가 사라진 진짜 이유, 손목시계와 고양이에 대한 미스터리들은 끝내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맨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대.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리틀 헝거는 그냥 배가 고픈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삶의 의미에 굶주린 ‘그레이트 헝거’
영화 <버닝>은 표면적으로는 삼각관계 스토리 혹은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그레이트 헝거’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해미는 어린 적 우물 속에서 올려다본 동그란 하늘과, 아프리카에서 본 찰나의 노을을 기억하는 인물이다. 판토마임으로 귤을 먹는 척하며, “중요한 건 진짜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하던 그녀는, 어쩌면 의미 따위는 없는 현실 속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종수는 소설가를 꿈꾸지만 정작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해미의 실종과 벤의 정체를 추적하면서, 그는 점차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과 해석을 갖게 되고, 마침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단순한 복수극도, 스릴러도 아닌, 세상의 불확실성과 모호함 속에서 자기만의 언어로 그것을 해석해보려는 한 작가의 탄생기처럼 느껴졌다.
무의식의 방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물은 일본어로 ‘이도’다. 무의식 중 하나인 ‘이드’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일까.
해미는 종수의 ‘무의식(id)’이다. 그중에서도 억압되고 배제된 그림자 같은 존재다. 종수가 처음 해미의 방에 갔을 때, 해미는 종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기억나? 옛날에 나 못생겼다고 한 거. 그게 중학교 다닐 때 네가 나한테 한 유일한 말이었어.” 이 말은, 종수가 사춘기 시절 무의식을 부정하고 억압했다는 은유처럼 들린다.
해미의 방은 ‘우물’과 닮아 있다. 깊고 좁은, 하루에 딱 한 번만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이다. 그녀는 어릴 적 우물에 빠졌을 때 종수가 자신을 구해줬다고 말하지만, 종수는 그 기억이 없다. 무의식은 그렇게 잊혔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세계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본 노을 이야기를 한다. 노을은 찰나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허무를 품고 있다. 그녀는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삶의 허무를 보고 온 것이다. 이후 그녀는 벤과 함께 ‘리틀 헝거’로 살아가며, 단지 재미와 자극을 좇는다. 그러면서도 해미는 계속해서 종수를 불러내며,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종수는 해미의 고통을 보지 못한다. 벤에게 해미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남자들 앞에서 옷을 벗었다는 사실에만 집착한다. “창녀나 그렇게 옷을 벗는 거야.” 라는 말은, 그가 다시 한 번 무의식을 억압한 순간이다. 중학생 때처럼. 결국 해미는 사라진다.
종수는 해미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우물, 분홍시계, 고양이… 그것들은 모두 해미가 실재했음을 증명해주는 조각들이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종수가 해미의 엄마와 언니를 찾아가 우물 이야기를 하며 해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제서야 그는 무의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벤이 데리고 있던 고양이에게 종수가 “보일아.”라고 부르는 순간, 마침내 그는 이 수수께끼 같은 세계를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종수는 무의식의 방에 들어가 소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벤을 죽임으로써, 냉혹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해소한다. 종수는 마침내,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창조해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버닝 속에 담긴 많은 상징들을 나름대로 해석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