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 우주

블루베리 냄새

by 희구


우주를 씻겼다.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은 후 깨끗한 잠옷을 입히고 있었다. 머리를 먼저 빼내고 한쪽 팔을 집어 넣으려는데, 우주의 입이 삐쭉 나와 있었다. 그건 불만이 있다는 거였다.

“우주, 왜?”

우주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내가 물었다.

“이모, 엄마는?”

우주가 물었다.

“엄마 어디 멀리 갔다 온대.”

“어디?”

“이모도 모르겠어.”

“언제 오는데?”

“그것도 모르겠어”

“그것도 몰라?”

“응, 우주가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있으면 엄마 온대. 자, 다 됐다.”

우주는 그대로 쓰러져 이불을 움켜쥐고는 얼굴을 파묻었다. 우주는 양쪽으로 머리를 흔들며 눈물을 닦아냈다. 한참을 울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용히 눈물 젖은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그런 거짓말을 먹으며 우주는 자랐다. 나는 성실한 거짓말쟁이었다. 거짓에 거짓을 보태어 나는 마치 선주가 외국 어딘가에 돈이라도 벌고 있는 것마냥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꾸며냈고, 우주는 엄마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지쳐 더이상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

선주는 예뻤다. 선주를 처음 본 날, 나는 그녀의 긴 속눈썹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치아도 고르고, 머리카락에서도 윤기가 흘렀다. 숙련된 조각가가 숨죽여 빚어낸 작품처럼 선주는 모난 데 없이 조화로웠다.

선주가 처음으로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을 때, 나는 내가 여자를 좋아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렇다고 해도 선주가 먼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친구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주는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유명인이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남자가 선주를 데리러 왔고, 선주는 동기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며 남자의 차에 올라탔다. 그런 남자들은 선주의 구두만큼이나 자주 바뀌었고, 그럴수록 선주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 무렵의 나는 동재와 만나고 있었다. 동재는 술자리에서 휴대전화에 무언가를 적어 내게 보였다. 그가 보여준 화면에는 ‘나랑 사귈래?ㅋㅋㅋ’라는 과격한 문장이 쓰여있었다. 스무살의 나는 거절하는 법을 몰랐고, 그렇게 첫 연애를 시작했다.

스무살의 지난한 젊음을 동재와 나누었다. 뭔가를 배우고 뭔가를 잃어버리는 동안 선주를 향한 나의 관심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주로 동재와 밥을 먹었고, 그는 일주일에 두어번 내 자취방에 들러 잠을 자고 갔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시간을 들여 빚여 냈다할지라도 깨지는 건 일순간이었다. 동재가 술에 취해 갑자기 찾아온 날, 그는 내 옷을 거칠 게 벗겼다. 그를 밀쳐냈지만, 소용 없었다. 그는 몸으로 나를 짓누른채 계속해서 성행위를 시도했다. 나는 그의 팔을 온힘으로 깨물었다. “씨발, 미친년이!” 그는 내 뺨을 후려쳤다. 뺨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는 속옷을 마저 벗겨내며 웃고 있었다.

몸 안으로 공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며 온몸을 울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내 몸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팔을 비틀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대로 그의 몸 아래에 눌려 있었다.

그날 동재의 숨에서는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났다. 나는 이를 악물고 천장을 노려보았다. 세계가 등을 돌리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

‘헤어지자ㅋㅋㅋ’는 과격한 문장을 보내자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주 많이. 한통도 받지 않았다. 밤중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지 않았다.

주위 모든 것들에 싫증이 났다. 그들은 덩어리로 존재했다. 나는 덩어리들에게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휴학계를 내고 호주로 떠났다.

*

강의실에 들어 온 선주는 얼굴도 붉히지 않은 채 가운을 벗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가랑이를 벌려 다른 쪽 무릎을 세웠다. 두 팔로 한쪽으로 땋은 머리를 틀어 올려 목선을 드러냈다. 동작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선주가 모델을 하려고 미대에 들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복학 후 다시 마주한 선주는, 만개한 꽃 같았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피어나기라도 한 듯, 아찔하도록 아름다웠다.

이내 주변에서 쓱싹거리는 연필 소리가 들렸다. 나도 연필을 들고 바쁘게 손을 놀렸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이었지만, 가슴과 엉덩이에는 보기좋게 살이 붙어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곡선이 가득했다. 선주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선주는 세 시간동안 서른 개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두 번의 짧은 쉬는 시간이 있기야 했지만, 그녀는 벗어놓은 가운으로 땀을 몇 번 닦아냈을 뿐,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었다. 선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과감한 동작을 취했다. 개중에는 그녀의 사타구니가 온전히 드러나는 것도 있었다. 나는 그곳을 빤히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더 빨리 선을 그려나갔다.

마지막 동작이 끝나고, 선주는 가운을 다시 챙겨 입고는 아무 말없이 강의실을 나갔다. 나는 도구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강의실에 있는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떤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돌아와 현실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

며칠 후, 선주가 나를 찾아왔다. 공강이 있어 시간을 때울겸 도서관에 들어서려던 참이었다.

“지수야, 안녕.”

“어? 안녕.”

“진짜 도서관에 있네?”

선주는 반가운 듯이 웃으며 내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그녀의 가녀린 손이 닿자 어쩐지 마음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조금 웃으려다가 이내 관두었다.

“나 찾아 다녔어?”

내가 물었다.

“응, 그런 셈이지.”

선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에 꽂았다.

“왜?”

내가 물었다.

“너 나 열심히 그리더라?”

선주가 물었다.

적당한 대답을 고르고 있는데, 그녀는 몸을 기울이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임신했어.”

그렇게 말하며 선주는 해맑게 웃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 그림 좀 보여줄 수 있어?”

선주가 물었다.

나는 말없이 가방에서 크로키북을 꺼내 건네 주었다. 마치 처음부터 선주의 것이었던 것처럼. 선주는 한 장씩 넘기며 유심히 그림을 보다가 그녀의 생식기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림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나 이거 주라.”

어쩐지 나는 선주에게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녀에게 그 그림을 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건 처음부터 선주의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는 그림을 뜯어 내어주었다.

“고마워.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

*

그날 이후, 선주는 종종 나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잠깐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사소한 몇 마디 말을 건네고 돌아갔다.

몇 번의 만남이 지나자, 선주는 자연스럽게 내 방에 드나들었다. 책장에 꽂힌 책을 넘겨보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를 열어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선주를 가만히 두었다.

나날이 선주의 몸은 무거워졌고, 그럴수록 나는 그녀를 대하기가 편해졌다. 선주에게는 따로 가족이 없어, 산부인과도 나와 같이 다녔다.

“집에 가기 싫다. 나 자고 간다?”

선주는 그렇게 말하며 내 이불을 끌어안고 잠에 들곤 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불을 끄고 선주의 옆에 누웠다. 잠에 든 선주의 얼굴은 쉽게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지금도 눈을 감고 그녀를 떠올릴 때면, 잠든 그녀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마치 그림으로 그려낸 것 같은 그녀의 속눈썹을 기억한다.

선주는 점점 더 자주, 더 오랜시간 내 방에 머물렀다. 자연스럽게 방 한켠에 짐이 쌓여갔다. 칫솔이 하나 더 생겼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곳곳에 떨어졌다. 함께 처음으로 장을 보러 갔을 때, 선주는 카트에 과일을 넣으며 간단히 꺼내 먹을 과일 몇 가지 정도는 집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선주는 내 무릎을 베고 바닥에 누워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는 걸 좋아했다. 선주가 그녀의 부푼 배를 만지작거리며 “지수야, 나 배고파.”라고 말하면, 나는 인형이나 쿠션 따위로 내 무릎을 대신하고, 바닥에서 일어나 과일을 꺼냈다. 그것들을 흐르는 물에 꼼꼼히 씻어 물기를 털어내고, 테두리가 아름답게 조각된 새하얀 접시를 꺼내 그 위에 과일을 예쁘게 담아냈다. 접이식 테이블을 펼쳐 접시를 올린 후 선주에게 손을 뻗으면, 선주는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선주의 배가 눈에 띄게 불렀을 때, 새벽에 블루베리를 사러 다녀온 적이 있었다. 잠결에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다녀온 선주가 다시 잠에 들지 못한 채, 나를 깨웠다.

“지수야, 블루베리 집에 없지?”

나는 야구모자를 뒤집어 쓰고 밖으로 나갔다. 근처 편의점 몇 군데를 돌며 블루베리를 찾아내 재고를 모두 털어 집으로 돌아왔다. 발소리를 들었는지 선주가 문을 열어주며 나를 껴안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선주에게서는 과일 냄새가 났다.

블루베리를 한 알씩 입에 넣어 음미하는 선주는 행복해보였다. 그럴때면 나는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머리를 땋아줄 때 느껴지던, 그런 류의 간질거림. 선주는 블루베리 한 팩을 먹어치우고는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이름 뭐라고 지을까?”

선주가 물었다.

“성은 이씨로 할 거야?”

“당연하지. 내 아들인데!”

선주가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뭐 생각해 둔 건 없고?”

“아직. 뭐가 어울리려나.”

선주는 그렇게 말하고는 배를 쓰다듬었다.

*

그리고 우주가 태어났다. 선주는 아이와 눈을 처음 맞췄을 때, 우주라는 이름이 번뜩 떠올랐다고 했다. 나도 그 이름이 좋았다. 이우주.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자취방을 정리하고 본가로 들어갔다. 취업을 준비하며 미술학원에서 그림 가르쳐주는 일을 시작했다. 일이 끝나면 마트에서 간단히 장을 보고 곧바로 선주의 집으로 갔다. 셋이서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씻었다. 우주와 선주가 잠에 들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주가 두 돌이 지나자, 더이상 내가 주는 돈만으로는 우주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며 선주는 밤마다 일을 하러 나갔다. 어린 우주는 자주 아팠고, 나는 결국 짐을 챙겨 선주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셋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주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있으면 선주는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옷을 한겹씩 벗어 던지고 휘청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선주가 씻는 동안 나는 어린이집에 우주를 데려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선주는 자고 있었다. 잠든 선주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몹시 지쳐보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우주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있었다. 선주는 욕실에서 씻고 있었다. 그때 선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는 선주의 가방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소리를 끄고 주방 식탁에 올려놓았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어 이름을 확인했다. 동재였다. 그리고 그 이름 옆에는 검정색으로 색칠된 하트가 붙어 있었다.

그날 저녁 학원 수업을 마치고, 엄마에게 우주를 맡겼다. 엄마는 우주의 얼굴을 보면서 “미운 녀석이 잘생기긴 했네.” 라며 툴툴댔다. 나는 우주에게 먹일 밥의 위치와 우주를 씻기고 발라줄 로션의 종류를 엄마에게 재차 확인시켰다. 엄마는 “이 녀석이 네 아들이냐?”라며 나무랐다.

옷장에서 선주의 옷을 꺼내 입었다. 엉덩이를 간신히 덮을 길이의 호피무늬 치마에 검정색 오프숄더 블라우스를 입은 거울 속의 나는 영락없는 술집여자 같았다. 하이힐을 신고 있는데, 우주를 씻기고 나오던 엄마가 그런 내 모습을 보았다.

“남자 만나러 가는 거였어?”

엄마가 말했다.

“그런 셈이지.”

집 앞에 미리 불러둔 택시를 타고 선주가 일하는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남자 무리가 내 옆을 스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정장차림으로 그들을 안내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동재였다. 동재는 머리를 뒤로 넘기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나는 동재 무리를 뒤따라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복도 끝에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문 앞을 지나쳤다가 다시 몸을 돌려 룸 안을 살폈다. 그 순간 문을 열고 나오는 동재와 눈이 마주쳤다.

“너, 뭐야?”

동재는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그는 뿔테 안경을 추켜 올리는 척 내 몸을 훑었다. 동재에게서 어렴풋이 냄새가 났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주었다.

“잠깐 나와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나갔다.

몇 분 뒤, 동재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야, 너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냐?”

동재가 물었다. 그리고 담배 한 모금을 빨더니 내 얼굴을 향해 뿜었다.

“너 선주랑 무슨 사이야?”

내가 물었다. 동재는 뜻밖이라는 듯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리더니 다시 뿔테 안경을 추켜 올렸다.

“선주? 내 각시지.” 동재는 그렇게 말하고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근데 너 뭐냐? 이제 와서 질투라도 하냐?”

나는 그 웃음을 본 적이 있었다. 내 위에 올라타 있던, 그날 본 웃음이었다. 정말로 선주의 휴대전화 속 동재는, 내가 아는 그 동재였다. 그는 내 예상보다 더 추악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그대로 뒤돌아서 걸었다. 뒤에서 욕설이 들렸으나 앞만 보고 걸었다. 골목길을 나와 택시를 잡아 탔다. 숨을 내쉬었다.

그 길로 나는 우주에게 돌아왔다. 엄마는 우주의 배를 토닥이고 있었고, 우주는 누워서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이모”

우주가 팔을 벌렸다. 나는 우주를 번쩍 들어올려 우주의 몸 냄새를 마음껏 맡았다.

*

언젠가부터 선주의 옷에서는 동재 냄새가 났다. 나는 선주가 벗어둔 옷을 두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곧바로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씻고 나온 선주는 우주를 한 번 안아주고는 침대에 누웠다. 선주와 짧은 포옹을 하고 나면 우주는 곧바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우주를 꼭 안아주고, “엄마가 피곤한가봐.” 하고 대신 변명했다. 그러면 우주는 괜히 어리광을 부리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선주와는 언젠가부터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선주는 침대에 누우면 저녁 출근 시간까지 그대로 잠만 잤다. 밥도 먹지 않았다. 나는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린이집에 들러 우주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저녁밥을 먹였다.

그날도 선주는 아무말없이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주의 몸은 물을 주지 않아 시들어버린 꽃처럼 심하게 말라 있었다.

“거기 가면 뭐 좀 챙겨먹어?”

내가 넌지시 물었다.

“응.”

선주는 짧게 대답하고,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갔다. 남겨진 우주는 내 다리에 앉아 블루베리를 한 알씩 집어 먹었다.

“엄마 밥 안 먹어?”

우주가 물었다. 나는 대답없이 우주의 입가에 묻은 푸른 즙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

그리고 선주가 죽었다. 경찰은 학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선주의 이름을 확인하고, 내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푸른 멍으로 가득한 나체가 누워있었다. 선주의 몸이었다. 경찰이 몇 가지를 내게 물었지만, 나는 대부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일을 마치고 우주를 데리러 갔다. 우주는 나를 보자마자 뛰어오더니 품에 안겨 친구들은 집에 다 가버렸다고 투덜댔다. 우주에게서는 블루베리 냄새가 났다.

“우주 오래 기다렸지?”

나는 가만히 우주의 등을 토닥였다. 아주 오랫동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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