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도 생각한 데로 준비되지 않았다.
10월 7일~9일의 2박 3일 후쿠오카 여행은 갑자기 결정 난 것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누구나 한 번은 다녀온, 혹은 여러 번 다녀온다는 그 후쿠오카라는 도시. 이렇게 일 때문에 바빠서 못 간다는 핑계로는 아무것도 내 인생에 진척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갑자기 예매하게 된 비행기표. 출발 일주일 전에 예매했는데 하필이면 타이밍 좋게 요금이 너무 싸게 나왔었다. "아 이건 여행 가라는 하늘의 계시는구나" 싶었다. (나는 무교이지만)
비행기 예매가 끝나자. 바로 숙소 예약에 들어갔다. 여행 1주일 전에는 정말 호텔 구하기가 어려웠다. 2박을 묵어야 하기에 기본적으로 35만원에서 50만원 사이의 숙박료 발생이 예상되었다. 잠자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만 이런 데에 돈을 허비할 순 없었다. 그저 그런 게스트하우스나 호스텔에도 머물기도 싫었다. 그래도 트렌드를 한번 따라야겠다 싶어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다. 후쿠오카 하카타 근처의 호스텔을 잡았다. 2박 숙박요금은 85,000원. 사진상 그렇게 좋아 보이는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숙소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단순히 잠만 자는 용도이기 때문에 나름 도심 주택가에 싸게 구했다는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출발 하루 이틀 전까지 계속 싸게 나온 호텔은 없는지 검색한 나였지만...
여행 날짜만 정해져 있었지 내게는 아무것도 준비되어있는 것이 없었다. 3달 전에 사두었던 후쿠오카 가이드북, 그리고 모 작가님께 선물 받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후쿠오카 책, 그리고 그냥 한 권으로는 부족해 한 권 더 구입하고 싶어서 구입한 후쿠오카 여행책. 총 3권의 책을 보았지만(자세히 읽어보진 않았다). 후쿠오카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진 않았다. 그래서 지도를 그려보았다. 후쿠오카를 그리고 그 위에 지하철 노선도를 그렸다. 나는 대중교통(그중에 특히 지하철)과 오로지 걸음으로만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경하기로 한 지하철 역마다 그 역 주변에서 내가 봐야 할 것, 내가 먹어야 할 것들을 적어나갔다. 그러니 조금 이해가 더 쉽게 되었다. 왜 책들 중에도 그런 책들이 있지 않는가. "지하철로 하는 서울 여행" 이런 비슷한 이름의 책을 종종 서점에서 본 것 같다. 나도 나 나름대로는 "지하철로 누비는 후쿠오카 여행"을 자체 제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와, 숙소, 그리고 내가 후쿠오카에서 둘러봐야 할 것이 정해졌다. 다 준비된 것 같았지만 제일 중요한 일본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작년 3박 4일 혼자서 오사카 여행을 하고서 속으로 "지금부터라도 일본어 공부 조금씩 해서 내년에는 네이버 번역기 안 돌리고 여행 와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딱 1년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변한 거라면 내 늘어난 모공과 흰머리 일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에어비앤비에 묵게 되니 괜히 기초영어나 기초 일본어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호스트가 영어권 대학에서 공부한 일본인이었다) 결국에는 정작 출발 전날까지 영어책, 일본어 책 한 번을 못 폈다. 그저 나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에 치장했다. 우리 집 아파트 앞 동네 미용실에서 새치머리 염색과 파마를 하고 있었다. 이제 당장 내일이 출발이었지만 영어든 일본어든 여행 외국어를 보기보다는 "아무리 혼자 다녀도 깔끔하게 다녀야지"라는 이상한 자기 위로를 하며 그렇게 출발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 여행도 아무래도 네이버 번역기가 애를 많이 쓸 것 같은 기분이 들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