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헤맨 사람의 레시피
스무 시간 남짓 이 세상에 내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소가 어디에도 없던 날이 있었다.
곧이어 터진 코로나 사태로 결국엔 다시 돌아와야 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앙굴렘에서 학기가 모두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파리에 요리사로서 일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보낸뒤 2-3곳에서 긍정적인 연락을 받았고 가장 보수가 괜찮았던 곳과는 인터뷰를 마쳤다. 그 사이 서울에 돌아와선 이태원 제일기획 뒤편에 있던 작은 내 공간을 정리했다. 친구에게 의뢰해서 만들었던 서서 만화를 그리기 위한 나무책상을 포함해 추억이 담긴 가구들을 전부 처분했고 기존의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도 읽지 않은 몇 권만 빼놓고 대부분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여행지에서 사왔던 몇몇 물건들을 제외하곤 삶을 꾸린다는 느낌을 주는 잡동사니들을 전부 버리거나 주변에 나눠주었다. 그 뒤에 앙굴렘으로 돌아가선 그곳에서 가졌던 물건들을 대부분 처분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년 내내 마음의 작용이 물리 작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볼 수 없기에 실체가 없다고 여기는 마음과 정신에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실체가, 질량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물리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성들은 서로 간의 힘을 유지하며 같은 궤도를 빙글빙글 돌고, 그 힘의 작용으로 아침에는 바닷물이 밀려 들어 왔다가 밤에는 다시 그만큼 빠져나간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힘과 동떨어져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아가는 걸까?
어딘가에 쉽게 적응한다는 건 점차 자기다움을 지워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함께 시간을 보낸 이들이 내게 미친 영향을 완전히 지워내고 털어버렸을 때, 그 힘의 작용에서 벗어났을 때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혔던 내 모습이 외부와 내부 사이의 공간에 위치한 이사하는 도중의 사람, 냉장고의 플러그를 뽑고 냉동실의 성에를 긁어내고 얼음 덩어리들이 녹아 물이 되는 과정, 그 속에 배인 균과 냄새 그 간의 모든 것을 닦아내려는 시도, 빛과 상호작용 하지 않으면서 질량을 가지는, 세상과 가장 미미한 상호작용을 하는, 우주의 팽창을 멈추고 역행하게 하는 암흑물질과 닮은 것 같이 느껴졌다.
‘먹고 살 걱정은 안 하겠네’라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에게 찾아 온 것은 미래의 전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앞으로 남은 평생의 시간 동안 나 자신의 가능성과 능력을 전혀 펼쳐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 남은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고집하고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내는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은 기존에 있는 안전한 자리에 들어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더라도 실패 할 수 있다. 반면에 실패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도전이라는 것이 있다. 이런 걸 나도 만들고 싶다는, 나의 의식에서 그럴듯한 어른이 되어야한다는 핑계에 가장 짓눌려 있던 생각도 나의 생각이라는 걸, 그 생각을 토대로 선택을 하고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 나의 의무이고 책임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내 안의 빛과 어둠을 완전히 꺼내서 청소해보는 일
스스로 한계라고 설정해놓은 고정점을 움직여 보는 일
너무 오래되어서 나를 괴롭혀왔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서 살펴보자.
세상이 나에 대해 가졌던 모든 영향력이 말소된 자리
완전히 텅 빈 냉장고를 새로운 재료들로 다시 채워보자.
그리고 지금부터는,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