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늘 한국 달
"달이다! 한국달이다!" 소리를 지르며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둥그런 보름달, 계수나무 아래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그 달님이 미국 하늘에 둥실 떠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팔을 쭉 뻗으며 힘껏 뒤꿈치를 들어 올렸습니다. 토끼와 절구공이에 손이 닿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반가움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자기도 보름달 뜨면 자세히 봐봐. 한국 달하고 똑같아, 참말로 똑 같이 생겼다니까!!"
마리 권사님은 대단한 유물을 발견한 고고학자가 아끼는 제자에게 자랑하듯 열심히 얘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인가 싶어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는데, 그분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웃음기가 얼른 숨어버렸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이 되살아나는 듯 권사님의 얼굴은 환희와 감동으로 일렁거렸습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매운 추위와 치 떨리는 가난을 회상하며 울분을 토하는 것으로 타인들의 마음을 열고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을. 헐벗은 두메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고, 열두 살에 가출해서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봤다는 구구절절 인생사보다 한국 달을 보고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더 뜨겁고 감동스럽다는 것을.
태어나 4년이 지난 후에야 출생신고가 되었다는 여인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딸부자집의 막내딸로 태어난 게 죄였습니다. 그녀 자신이 아닌, 그녀 운명이 저지른 실수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그녀는 출생일과 전혀 무관한 생년월일로 살아가고 있답니다. 미국은 나이를 물어보는 것조차 실례가 되지만 한국은 대뜸 민증부터 까자 하고, 한 살이라도 어리면 아랫것 취급을 하던 사회였습니다.
실제로는 3, 4년이나 늦게 태어난 계집애들이 반말을 하고 심부름을 시키고 폭력을 행사하던 따위의 애환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실제보다 다섯 살, 때로는 여섯 살이나 어린 나이로 살아왔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미국생활을 얘기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영어를 공부한 지 몇 달이 되어도 실력은 좀처럼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변해가는 남편을 의식하면서도 불평 한 마디 유창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40년 넘게 한국말로 굳어버린 혀도 문제였지만, 뛰어났던 기억력도 형편없이 무디어져 있었습니다. 화가 나면 사전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그냥 울어버리고 말자는 자포자기는 더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눈물이 나면 뒷마당으로 나가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았습니다. 고국이 그립고 같은 언어를 주고받던 사람들이 몹시도 그리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밤, 호수에 잠긴 둥그런 보름달을 보았습니다. 계수나무 그늘아래 토끼가 떡방아를 찧는 보름달이 물속에 떠 있었습니다.
"호수에 잠긴 달은~~~ 당신의 고운 얼굴~~~"
울얼웅얼 노래를 되풀이하는 동안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습니다. 호수에 잠겨있던 보름달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렇게 마음이 가라앉더랍니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서글퍼질 때, 태양을 우러르며 향수에 젖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한국 하늘에서 반짝이던 그 별이라고 환호하며 반기는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태양과 별은 계수나무와 토끼를 키우지 않는 때문일까요?
문득, 마리권사님과 함께 바라보았던 어느 밤의 보름달이 생각납니다.
"내 말이 맞지? 한국 달하고 똑같지? 안 그래?" 권사님은 의기양양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정말로 한국달이랑 똑 같이 생겼네요!" 나는 몹시 감탄스러운 어조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세상에 뜨는 모든 달은 같은 하나의 그 달이라는 얘기는 입밖에 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출생한 날과 출생신고한 날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지가 아니듯, 나라마다 각각 다른 달이 뜬다는 권사님의 믿음도 결코 무지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 드렸을 것입니다. '달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 뜨는 달이 미국에도 뜨고 캐나다에도 뜹니다. 세상에는 오직 한개의 달이 있을 뿐이랍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틀렸습니다. 말희의 하늘에는 한국달이 뜨고 마리의 하늘에는 미국달이 떴습니다. 그리고 권사님의 하늘에는 넷째 날에 창조된 에덴동산의 그 달이 떠 올랐을것입니다.
세 개의 달을 품고 있는 그분은 갈수록 둥그런 보름달을 닮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햇빛처럼 너무 강렬하지도 않고 흐린 밤의 별빛처럼 쉽사리 가리워지지도 않는 온화하고 적당한 밝음이 그랬습니다. 그리울 겨를조차 주지 않는 태양과 별이 아니라 잊힐까 두려워질 때쯤이면 찾아와 주는 보름달의 고요로운 여유가 그랬습니다.
나도 권사님을 닮을 수 있을까 질문해 보았습니다. 오직 한 개의 달만 떠 오르는 빈곤한 가슴으로는 결코 말희도 마리도 권사님도 될 수 없다는 대답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안에서 들리는 대답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나도 부드럽고 온화한 밝기의 보름달, 동포의 서러운 향수를 달래주는 미국의 한국달을 닮아갈 수 있으리라는 가만한 소망을 품어봅니다. 미국달도 뜨고 한국달도 뜨고 하나님의 달도 뜨는 넉넉한 가슴의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