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 새벽의 고요한 출산처럼

by 해원

날마다 불행을 본다.

요즘 불행한 사람들이 자꾸 늘어난다.

어이없는 죽음과 구속이 가슴을 부수어 삐죽한 슬픔의 조각들로 술렁이게 한다.

나도 물방울이 되어 흔들린다. 아직은 동그랗지만 터지고 넘치면 뾰족한 파편이 될 것이다.


내 주변에는 물방울보다 불씨들이 더 많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화마로 번질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불티가 내 안에까지 날아들어 자꾸 거슬린다.

그러나 내 흔들리는 물방울이 불씨에 떨어져 소음과 연기를 일으킬까 늘 조심했다.

물과 불은 상극이어도 상생해야 할 이웃이다.

인간세상을 믿는 색깔은 달라도 창조주를 믿는 모양은 다르지 않은 가족들이다.


그랬는데, 그저께 기어이 터트려진 물방울 하나가 자매 같은 그녀를 슬프게 했다.

“너도 사람 죽이는 하나님을 믿니? 암만 성경을 뒤져보고 구글링도 해 보고 에이아이(AI) 한테도 물어봤지만 예수님이 살인한 적은 없더라. 도대체 우리는 이스라엘의 신을 믿는 거니, 우리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믿는 거니?”

깨진 물방울은 그렇게 소음을 냈다. 시끄러웠다.


그녀는 마음이 참 여린 자매다. 너무 여려서 남편과 주변사람들과 의견을 늘 같이한다.

신앙도 정치도 자신의 색깔과 모양은 가만히 묻어둔다.

그녀는 내 말에도 공감했다. 끄덕이는 그녀의 표정이 슬퍼 보여 나는 금세 후회했다.

괜히 그랬다고, 불티도 아닌 곳에 소화기를 분사했다고.

엊그제 밤에도 자책했고 어제 낮과 밤에도 속을 끓였다.

“나의 주님, 제가 상처를 냈거든 그 상처 아버지가 치료해 주세요.

저를 용서하시고, 분별력 있는 강한 인간으로 재생시켜 주세요.”

새벽잠이 깨면, 습관된 주기도문이 내 입술을 열었는데 어제와 오늘은 다른 기도가 입술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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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의 탄생을 즐거워하는 강쥐와 사슴들은 언제나 행복하다


창문을 본다. 원죄 없는 아기의 성스러운 탄생처럼 새벽의 자궁이 열리며 새아침이 태어나고 있다.

비명도 울음도 없이 가만가만 머리를 내미는 새날, 새벽의 출산이 신비롭다.

이제 태양이 수만개의 빛나는 손을 내밀어 신생의 아침을 목욕시키고 금실로 짠 이불을 펼쳐 포근히 덮어줄 것이다.


날마다 새날이다.

새날은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는다.

모든 태어나는 날들은 한결같이 신비롭고 떠나가는 모든 날들은 차별없이 성스럽다.

삐죽삐죽한 슬픔의 파도를 일으킨 불량한 저들도,

파도에 휩쓸려 애꿎게 사라져간 연약한 이들도,

같은 무게의 신비와 성스러움이다.

그러니 저들을 성스러운 기억 속에 머물게 하자.

기억은 영원토록 죽지 않으니까.


행복하자.

볼수록 더 슬퍼지는 요즘에는 뉴스를 보는 시간도 줄이자.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맞닥뜨리는 기회도 밀어두자.

맞아서 멍든 우리의 상처만 아파하지 말고, 때리다가 생긴 저들의 상처도 다독여 주자.

“아, 어떻게 저런 일이…!!! 저런 나쁜 자식들!!”

분노 실린 욕설을 뱉아내는 대신 간절한 기도를 올리자.

“아버지, 저들을 혼내 주세요. 누가 나쁜 놈인지는 아버지가 아시니까, 나쁜 놈들 혼내 주세요. 꼭이요.”


예수님이 내 편이면 좋겠다. 그러면 더 행복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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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손 내밀어 만지고 안아주는 햇님,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늦게 헤어지는 언덕과 나무는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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