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은 나쁜 게 아니다

거짓말의 분별적 사용이 필요한 이유

by 김호빈

거짓말은 나쁜 게 아니다. 거짓말은 그 말을 내뱉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이롭다. 일반적인 거짓말은 발화자 본인을 위해 사용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고 자랑거리를 떠벌리며 더 나아가 우월감을 느낀다. 반대로 또 다른 거짓말의 유형인 선의의 거짓말은 청자, 즉 듣는 사람을 위해 활용된다. 그러니까 거짓말은 나, 너, 우리 모두에게 좋게 작용하는 셈이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달고 산다. 한 번은 나를 위해, 한 번은 남을 위해. 기업 입사 전형 중 하나인 인적성 검사에서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해 본 적이 없다"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하면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이를 두고 '신뢰도 문항'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 자체가 거짓말이라고 공인된 것이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부끄러울 것 없다. 거짓말은 유서 깊다. 거짓말은 인류 역사 내내 존재한 현상이었으며 생존 전략이었다. 공리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 하에 거짓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거짓말이 다수에게 이익이 되면 좋은 것이고 손해로 작용하면 나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 도덕철학과 심리학 역시 거짓말을 '악의적 거짓말'과 '친사회적·이타적 거짓말'로 구분하고, 후자는 관계 유지와 갈등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핵심은 거짓말 그 자체가 아니라 거짓말의 색깔이다. 우리가 지양해야 할 거짓말은 농도가 짙고 한쪽으로 치우친 악의적 거짓말이다. 악의적인 거짓말은 발화자와 청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를 헐뜯고 모함하며 사회의 갈등을 조장한다. 새빨간, 새하얀, 새까만, 새파란, 샛노란 거짓말. 악의적 거짓말이 확산하여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중세시대 마녀사냥이 대표적 예시다. 요즘 기승을 부리는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친사회적 거짓말의 필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적대심과 갈등으로 가득한 시대에는 지나치게 솔직한 것이 서로에게 상처라서다. 깊은 관계가 사라지고 인간관계가 파편화되며 사람들은 서로에게 담벼락을 높게 쌓는 사회. 정치 성향이 다르면 사랑도 하지 않는 세태. 솔직함이 자기 자신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결국 거짓말은 모두를 위한 생존 공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인 갈등 해결을 위해 서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순진하게 들린다. 도덕책에나 나올 법한 당위적인 주장처럼. 게다가 그 말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거짓말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활용되는데, 이 경우에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을 위해 거짓말에 반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거짓말은 적당히 가려서 해야 한다.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고 나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거짓을 내뱉어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악의적이지 않게끔 말이다.


"사람들은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씁니다". 드라마 <안나>에서 거짓말을 무절제하게 내뱉는 이유미·이안나(수지)는 이 같이 말한다. 그리고 결국 본인이 벌인 거짓말을 통제하지 못해 그 사이에서 질식한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하고, 모든 거짓말이 나쁜 것도 아니다. 문제는 거짓말의 목적이다. 새빨간 농도 짙은 거짓말이 아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회색 거짓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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