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과 회피의 차이를 중심으로
인생은 도망이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에 쫓긴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최선을 다해 도망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끝없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다. 가만히 머무르다간 잡아 먹히고, 도태되며, 발전의 기회를 놓친다. 도망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에 다다르기 위한 선택이다.
시간을 조금만 돌려 보면 사실 인류사 자체가 도망의 역사다. 인류는 다른 부족을 정복하기 위해, 인구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온난한 기후를 찾기 위해, 종교적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꾸준히 도망쳤다. 모두 욕심과 욕구에서 기인한 도망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가 기후 변화와 기근을 피하려 다른 대륙으로 이동한 게 도망의 시초다. 현재 조건에서 벗어나려는 도망욕이 인류 발전과 문명 건설에 기여한 셈이다.
그래서 도망은 회피가 아니다. 회피는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해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행위다. 반면 도망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오히려 삶을 직면하는 행위다. 더 행복하고, 더 배부르며, 더 쾌적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 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해 행해지는 도망은 도전의 또 다른 말이라고 불러도 전혀 과하지 않다.
나는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도망을 가야만 비로소 낙원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말은 합리화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사람, 스스로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 세상을 좁게 보는 사람들의 합리화.
도망치지 않으면 제자리에 머무르게 된다. 만약 현재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 같다면, 도망쳐야 한다. 새로운 식물을 키우거나 운동을 시작하는 사소한 것부터, 완전히 다른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까지,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모두 도전이고 도망이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인터넷 강의로 사회탐구 과목을 공부했다. 당시 해당 과목을 가르치던 강사는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지금 당장 공부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낙원에 다다를 수 없으며, 공부보다 나은 건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다.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열심히 공부했다.(...)
최근 그 영상이 내 릴스 알고리즘에 다시 등장했다. 세월에 훌쩍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그 말을 들으니 반감이 들었다. 그 강사의 말 역시 좁은 시야를 가진 사람의 합리화처럼 느껴졌다. 좁은 시야는 종종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곤 하는데, 딱 거기에 들어맞았다. 특히 요즘에는 대학교에 들어간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 적성보다 성적에 따라 전공을 선택하고, 그렇기 때문에 전공과 무관하게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게다가 돈을 벌거나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분야도 다양한데, 강사가 학생들에게 '공부'라는 좁디좁은 시야만을 주입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강사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그 말에 공감하는 것은 결국 도전 자체가 어려운 우리 사회 특징 때문이다. 저성장의 고착화, 양극화 심화, 불황, 뭐 이런 것들 때문에 사회가 불확실하니 현재 상황에 적당히 안주하며 사는 게 최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탓이다. 하지만 사회는 항상 불확실하다. 인간은 도망치며 살아남았기에, 우리는 더 행복하고, 더 만족스러우며, 더 나은 삶을 위해 계속 도망쳐야 한다. 그게 운동이 될 수도, 식물 가꾸기가 될 수도,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