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9 작업노트
예술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종종 벽을 마주하게 된다. 기술적 문제, 예산, 행정적인 절차,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 혹은 그 모든 것을 넘어서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 이 질문은 단순한 피로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 반복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다.
사람들은 예술이 없어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술보다 생존이 먼저이며, 지금은 복지나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도 한다. 예술에 쓰이는 예산이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사실 맞는 말이다. 먹고살아야 하는 삶 앞에서 예술은 너무도 사적인 감정의 표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에 대한 변론을 하자면, 예술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감정과 경험, 즉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작업을 하며 가장 의미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그것을 통해 누군가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닿았다고 말해줄 때다. 그것은 설명되지 않고, 정확히 규정되지도 않는 감정이다. 어떤 예술가의 작품에서 나 또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감정의 결이 익숙하면서도 전혀 다른, 자연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동과도 닮았지만 훨씬 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 가볍다고 말하기엔 잔상이 남고, 무겁다고 하기엔 너무 조용한, 그런 감정.
예술은 실용적이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 쓸모없음을 통해 인간다움을 회복한다. 효율성과 결과로 측정할 수 없는 감정, 기억, 욕망, 그리고 질문들이 머무는 곳. 예술은 생존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묻는 사유의 방식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영감을 주고받는 과정 그 자체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예술가의 작업은 종종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과 닮아 있다. 결과물은 보일지언정, 그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가는 저마다의 이유로 작업을 한다. 어떤 이는 사회와 소통하려 하고, 어떤 이는 자신의 내면을 기록하며, 또 다른 이는 그저 손에 익은 움직임에 몸을 맡긴다. 자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작업은 없고, 그 모든 작업은 결국 ‘의미’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다.
문화 속에는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사조라는 것이 있다. 이는 당대의 미의식과 사유, 기술과 감정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만드는 흐름, 우리가 이끌려가는 방향이 정말 인류가 바라는 방향인지, 아니면 일부의 환상인지 확신할 수 없다.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우리는 왜 이토록 고통받으며 예술을 하고 있는가.
정확한 답은 없다. 다만,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무언가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자리를 통해 누군가가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다. 나는 그 가능성, 그 작은 영감의 움직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