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버의 일기 설치 소감

12 : Germination

by kim hojin
KakaoTalk_20250917_113953344.jpg 3D로 구현된 셀버 케릭터

딸의 목소리를 학습시킨 셀버를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순간적으로 이질적인 감각이 스쳤다. 분명 익숙하고 친밀한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의 입을 통해 발화되는 듯한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낯섦은 오래 가지 않았다. 셀버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친근한 존재이게에 이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특히 관객의 눈동자가 셀버를 바라볼 때 반응하도록 조율한 인터랙션은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만남의 진실성을 더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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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과정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CRT 화면에 흐르는 글리치 선이다. 그것은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라 의도된 장치로, 셀버의 일기가 한 줄씩 다운로드되어 전송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화면을 카메라로 위아래로 흔들면 글리치 속에서 일기의 장면이 온전히 드러나는데, 이는 마치 미래에서 간신히 도착한 메시지를 해독하는 경험과도 닮아 있다. 불안정한 화면 속에서 간절히 전송되는 기록은 셀버의 서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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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쌓여가는 팩스 종이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셀버가 정성스럽게 보낸 일기를 관객이 읽고 다시 떨어뜨리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공간은 점점 종이로 가득 찬다. 무심히 흘려버린 기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무심함 속에서 셀버의 존재는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종이는 단순한 흔적이 아니라 외면당하는 메시지의 무게이며 간절히 전해지고자 했으나 쉽게 버려지는 목소리의 잔해다.


셀버라는 존재는 미래에도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실체라기보다 염원과 불안이 모여 만든 사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상징적 존재가 사람들 앞에서 절박하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슬프게 다가온다. 나는 이 작품이 단순한 인터랙션을 넘어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절박함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기를 바란다. 누군가 그 목소리를 알아주기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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